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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화  『드롭박스』




#1. 신사동에서 길에 버려진 아기를 발견 후 보호할 곳이 없어 베이비박스를 찾은 관악구청 공무원

#2. 미성년자 아내가 아기를 낳고 떠난 후, 홀로 친구들과 아기를 키워오다 상황이 악화돼 베이비박스에 위탁을 부탁한 미혼부

#3. 아기 친부의 폭력에 시달려 아기를 데리고 집을 나와, 찜질방 등을 전전하다 돈이 다 떨어져 베이비박스를 찾은 미혼모



위의 사례들은 사단법인 비투비의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에 나온 베이비박스를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인 베이비박스는 2009년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가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버려진 아기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끝에 탄생한 결과다.



끊이지 않는 영아 유기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에 따르면 영아 유기 건수는 2017년 261건, 2018년 320건, 2019년 237건을 기록했다. 이틀에 1명 이상의 아기들이 버려지는 셈이다.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영아 유기의 가장 큰 원인은 ‘출산 후 양육 시 부모가 경험하는 경제적인 곤란’이다. 이외에도 영아 유기의 원인에는 ‘부모의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출산’, ‘입양의 어려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시설로 보내지는 유기 아동, 원인은 입양특례법?


작년 베이비박스를 찾은 아기는 137명이다. 이로써 2009년 12월 이래로 11년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누적 아기 수는 1,822명에 이르렀다. 올해도 벌써 43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왔다. 베이비박스에 담긴 아기들은 과연 어디로 갈까. 우선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가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를 경찰청에 신고하면 관할파출소에서 방문해 조사한다. 이후 관할구청 공무원이 방문해 아기를 인도받고 시립 어린이병원으로 데려가 건강검진을 받게 한다. 검진 결과 이상이 없으면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로 옮겨져 며칠 머물다가 보육원으로 간다.


우리나라 아동보호 체계는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의 원가정 보호 원칙을 따른다. 따라서 요보호아동이 발생할 경우 원가정 복귀, 입양이나 위탁, 시설 입소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 962명 중 96.6%(929명)가 임시 보호 이후 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장애아동시설 등 시설에 입소했다. 원가정 복귀, 가정위탁, 입양 등 가정 보호로 조치된 아동은 33명(3.4%)에 불과했다. 전국입양가족연대 김지영 국장은 이에 대해 “국가 예산과 조직이 시설, 입양이나 위탁, 원가정 순으로 비대칭적으로 편성되고 운영되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가 입양되지 못하고 시설에 입소하는 원인으로 현행 입양특례법이 꼽힌다. 2011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가 된 아동만 입양이 가능하도록 명시하기 때문이다. 이에 김 국장은 “입양특례법의 가장 문제시되는 독소조항은 자비 없는 출생신고제”라며 “입양을 하려는 사람도 입양을 가야 하는 아이들도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해당 조항을 비판하는 이들은 2013년 이후 급격하게 추락한 입양률이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해당 조항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한편 입양되는 아동 입장에서 입양특례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뿌리의집 김도현 목사는 “보편적 출생등록은 양보할 수도, 양보해서도 안 되는 아동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이 권리를 유보하자는 주장이나 이 권리를 훼손하는 일에 기초해서 사회적 주장을 펼치는 이들을 보는 일은 민망하기까지 하다”고 밝혔다.



베이비박스, 생명 지키는 장치 vs 유기 조장


베이비박스는 국가에서 정식으로 운영하는 시설이 아니다. 2009년 주사랑공동체에서 처음 베이비박스를 만든 뒤 현재 전국에 두 곳이 운영 중에 있지만 모두 국가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만든 주사랑공동체의 이대동 대외협력 담당자는 “유기를 방임한다는 것은 생명을 해치려는 목적과 의도를 방치한다거나 동조한다는 뜻”이라면서도 “하지만 베이비박스는 10여 년간 1,860여 명의 아기를 살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베이비박스는 아기들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지만, 존폐 여부는 지속해서 논란이 됐다. 유엔(UN)은 2011년 세계 각국의 베이비박스를 없앨 것을 권고했다. 영아 유기를 조장할 수 있고 친부모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해 아이가 자신의 유전적 정체성에 대해 알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관악구청 및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 등은 베이비박스를 불법 시설물로 간주했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를 옹호하는 이들은 베이비박스가 유기되는 아기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오영나 대표는 “(베이비박스는 아동 유기를 조장할 수 있는 민간 운영 시설이지만) 유기가 쉽게 없어질 수는 없기에 유기 이후의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베이비박스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베이비박스의 존폐 논란 속에서도 변함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바로 UN 아동 권리협약뿐 아니라 각국 아동보호법이 강조하는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이다. 결국 베이비박스로 아이의 생명을 최소한으로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과 베이비박스가 아이의 비극을 조장한다는 입장 모두 아동의 기본권과 행복을 위한 고민으로부터 나온 의견인 셈이다.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이 수 줄이려면


아동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결국 베이비박스에 도착하는 아동의 수를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주사랑공동체 측은 ‘비밀(보호)출산제’가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밀출산제는 미혼 산모가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고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고 양육 포기 시에는 지자체가 바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다. 이 대외협력 담당자는 “현행 입양특례법에서는 10대 미혼모 임신, 타의에 의한 임신 등의 경우에는 자의든 타의든 출생신고에 어려움이 있다”며 “보호출산제의 시행은 베이비박스로 보호되는 영유아들을 크게 감소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밀출산제가 아동 유기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김 목사는 “비밀출산제는 출생등록의 일시적 회피일 뿐 유기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제3지대 임신출산여성 긴급지원센터’와 ‘임신·출산·수유 여성 긴급 위기지원 센터’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조속히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해당 센터 설립을 통해 “아동과 모성이 결별하지 않고 위기를 이겨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 변화가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입장도 있다. 바른인권여성연합 전혜성 사무총장은 “제도적 변화만으로는 영아 유기를 줄이는 것에 한계가 있다”며 ‘생명과 그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르치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열 달 동안 품어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정말 버리고 싶어서 전국에 두 곳밖에 없는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많을까.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부모들에게 베이비박스만이 해답이 돼서는 안 된다. 피치 못할 사연으로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들이 없도록, 수많은 사연을 가진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일지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김혜지 기자 hyejee000720@sogang.ac.kr

박주하 기자 jhpark@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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