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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장에 들어선다. 신부가 착용한 화려한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그날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신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동안 결혼식 날 신부의 옷은 ‘흰색 웨딩드레스’가 당연했다. 그러나 이제 ‘화려한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옛말이 되고, ‘이색 웨딩복’이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19년 모델 최소라는 결혼식에서 흰색 드레스가 아닌 검은색 드레스를 입어 큰 화제가 됐다. 이처럼 최근 각기 다른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웨딩복을 찾는 신부들이 늘고 있다.


다채로운 색, 넓어지는 선택지

웨딩드레스 대여샵 방문기


▲ 웨딩드레스 대여샵 입구에 위치한 검은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네킹.


▲ 웨딩드레스 대여샵에 진열된 다양한 웨딩 드레스.


지난달 31일 기자는 양천구의 한 웨딩드레스 대여샵을 방문했다. 매장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매장 입구에 놓인 마네킹이었다. 마네킹들은 모두 하얀 웨딩드레스가 아닌 검은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유색 드레스 코너였다. 특히 검은 드레스는 하얀 드레스만큼 옷 가짓수가 많았다. 검은색 외에도 빨간색, 분홍색, 녹색, 남색 등 다양한 색의 드레스가 진열돼 있었다. 오는 5월 결혼식을 앞둔 박이형(28) 씨는 “피부가 어두운 편이라 하얀색보다는 짙은 베이지색 드레스를 찾고 있다”며 “꽃을 좋아해서 베이지색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싶었는데 재고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검은색 웨딩드레스를 찾던 A(25) 씨는 “하얀 드레스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입기 때문에 조금 식상하고 잘록한 라인의 검은 드레스가 더 우아해 보인다”며 “한 번뿐인 결혼식인 만큼 독특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원한다”고 말했다. 웨딩 ‘드레스’가 아닌 웨딩 ‘수트’를 구매한 방문객도 만날 수 있었다. 이윤서(31) 씨는 “(궁금해서) 웨딩 수트를 구매해 봤는데 마음에 들어 이후 결혼하게 된다면 수트를 입을까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변에도 수트를 입고 결혼하신 분이 있다”며 “언젠가는 웨딩 수트가 크게 유행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일상과 웨딩의 경계 허물어

웨딩드레스가 아닌 웨딩복으로 거듭나다


그동안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에서만 입고 처분되는 옷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결혼식 후에도 입을 수 있는 일상복 디자인의 ‘다회성 웨딩복’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지난해 2023 F/W 여성복 컬렉션에서 웨딩드레스와 일상복을 조합한 옷들을 내놓았다. 그는 심플한 니트와 하얀 스커트를 매치하는 등 웨딩복과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옷을 선보였다. 



▲ H&M의 웨딩드레스를 직접 입어봤다.


SPA 브랜드 H&M에서도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웨딩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다. H&M 온라인 매장에는 ‘웨딩’ 카테고리가 따로 존재한다. 해당 카테고리에선 드레스뿐 아니라 스커트, 블라우스, 액세서리 등 다양한 웨딩 아이템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일 기자는 H&M 홍대점을 방문해 웨딩 카테고리에 있는 옷을 입어봤다. 착용한 H&M 웨딩드레스는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줘야 할 만큼 긴 전형적인 웨딩드레스와 달리 발목까지 오는 기장으로 평상시에 입어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이날 구경한 옷들은 전반적으로 심플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다회성 웨딩복은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도록 제작해 웨딩드레스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웨딩드레스의 가격은 매장마다 다양하나 평균적으로 100만 원 안팎이며, 피팅비로만 5~10만 원의 추가 비용을 받는 매장도 있다. 기자가 방문한 웨딩드레스 대여샵은 다른 매장에 비해 낮은 가격의 드레스를 판매·대여하는 곳임에도 드레스를 대여하려면 대략 15~40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반면 기자가 H&M 홍대점에서 입은 옷은 주로 2~4만 원대였고 가장 비싼 옷이 11만 9천 원이었다. 박 씨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만 200만 원이 훌쩍 넘는다”며 “웨딩드레스로 입을 저렴한 옷이 많아져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개인의 가치에 따라 소비하는 시대


이색 웨딩드레스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신부들이 선택하는 ‘에코 웨딩드레스’도 있다. 에코 웨딩드레스는 합성섬유 대신 옥수수 전분, 닥나무, 쐐기풀 등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 드레스다. 환경, 사회, 인권 등 윤리를 소비 결정의 기준으로 고려하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에코 웨딩드레스 소비로 이어진 것이다. 에코 웨딩드레스와 함께 음식, 꽃, 청첩장 등 버려지는 쓰레기를 최소화해 환경 오염을 줄이는 ‘에코 웨딩’을 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는 에코 웨딩드레스 소비가 에코 웨딩이 아니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에코 웨딩을 지원하는 비영리 NGO ‘그린웨딩포럼’ 측은 “‘에코 웨딩드레스’가 천연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제작 과정에서 에너지가 배출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에코 웨딩드레스도 결국엔 새로 옷을 제작하는 것이기에 에너지가 배출된다는 설명이다. 


이제 웨딩드레스는 ‘흰색 드레스’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결혼식에서 하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회성 옷이 아닌, 일상에서도 편히 입을 수 있고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된 ‘나를 위한’ 옷, 웨딩드레스. 그 귀추가 주목된다.


글·사진 | 양윤서 기자 yunseo7196@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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