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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실리카겔의 팬인 기자는 떨리는 마음으로 콘서트 티켓팅 창을 열고 8시가 되길 기다렸다. 3, 2, 1. 회색이었던 예매 창이 붉게 살아나고, 기자는 다급히 예매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기자가 받은 대기 번호는 ‘14921’. 가망 없는 숫자에 X(구 트위터)에 들어가니 티켓을 양도한다는 게시글들이 줄을 이었다.


고도화된 암표 수법

암표 수요 증가해


암표란 기존 푯값에 웃돈을 붙여 판매하는 표를 말한다. 암표 거래는 주로 X, 티켓베이, 중고나라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뤄진다. 대부분의 암표는 기존 티켓에 추가 금액인 프리미엄이 붙는다. 암표를 판매한 경험이 있는 A(24) 씨는 프리미엄은 공연자, 좌석 위치, 공연장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원가가 3만 원인 시상식 티켓을 33만 원에 판매한 적이 있고, 원가 10만 원인 팬미팅 티켓을 85만 원에 구매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프리미엄을 배로 붙여 암표를 판매하고 있다.

 

암표 거래 수법 또한 고도화됐다. 콘서트 입장 전 예매자 정보와 신분증을 대조한 후 티켓을 배부하는 방식으로 암표를 단속하자 아이디 옮기기수법이 등장했다. 아이디 옮기기란 암표 거래상이 전문 업자를 고용해 본인의 계정으로 예매한 좌석을 암표 구매자의 계정으로 넘겨줘 신원 확인 절차를 통과하는 방식이다. A 씨는 구매한 암표로 입장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이디 옮기기로만 양도받아서 그런 적은 없다고 전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대리티켓팅도 확산하고 있다. 대리티켓팅은 암표 거래상이 구매자의 아이디, 비밀번호를 받아 대신 티켓팅하는 것으로, 프리미엄에 해당하는 금액을 추가로 받는다. 대리티켓팅 업자들은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정상적으로 티켓팅을 하는 사람보다 먼저 예매 페이지로 접근한다.

 

 

암표 거래상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하며 합법적인 방식으로 예매하는 일반 팬들은 티켓팅에 성공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불법 매크로로 전문 업자들이 좌석을 더욱 빨리 선점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예매에 실패한 팬들이 암표를 찾게 되고, 암표 수요가 늘자 암표에 붙는 프리미엄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대구대 심리학과 박은아 교수는 온라인 예매 방식이 일반화됨에 따라 매크로 프로그램과 같은 기술적 방법을 동원하는 암표상들이 개인 소비자의 구매 기회를 침해한다이는 제한된 좌석에 부적절한 방식으로 희소성을 부여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팬인 B(21) 씨는 암표가 불법인 것도 알고 있고, (암표를) 사지 않아야 팔지도 않는 걸 알면서도 티켓팅에 결국 실패해 암표를 구매했다고 토로했다.


가수가 근절에 나선다

본인 확인 절차 강화, 해답 아냐


암표 가격이 증가해도 지속적 소비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 등의 문화 상품은 뿌듯함, 행복과 같은 경험적 만족감이 소비 목표이기 때문이다가성비와 같은 합리적 효용성 원리를 티켓 구매에 적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기호가 반영된 소비에는 원가 몇 배 이상의 가격에도 관대해지며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암표 거래 성행으로 아티스트 차원의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가수 아이유는 지난해 9월 팬 콘서트부터 불법으로 거래되는 티켓을 신고하면 해당 좌석을 신고자에게 제공하는 암행어사 제도를 시행했다. 실제로 팬들의 신고로 12건의 암표가 적발돼 가수와 팬이 협업한 적극적 대응으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지난 2월 정당한 절차로 티켓을 예매한 팬이 부정 거래로 의심받아 콘서트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암행어사 제도는 폐지됐다. 이에 암표 거래상들 때문에 합법적인 절차로 예매한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본다며 논란이 일었다. 모든 대리 예매를 막으면 온라인으로 티켓 예매하는 것이 어려운 미성년자, 노년층 등은 공연을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본인 확인 후 채워준 팔찌 형태의 티켓.


최근 많은 공연에서 암표 구매자의 입장을 제한하고자 본인 확인 부스를 운영해 신분증과 대조하여 본인임을 확인한 후 티켓을 배부한다. 특히 하이브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의 경우 신분증과 대조해 문제점이 발견되면 ‘CS 부스(CensorShip 부스)’로 보내 카카오톡 지갑을 조회해 신분증상 정보와의 일치를 확인하는 더욱 엄격한 본인 입증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본인 확인 절차 강화도 암표를 완전히 근절하진 못한다. 암표 판매자의 신분증을 빌려 입장에 성공했던 B 씨는 “(본인 확인의 일환으로) 주소를 외워보라 했는데 미리 외워서 들어갔다공연장에 들어갈 사람은 어떻게든 들어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암표 법안 실효성 논란

대중에 비판적 인식 필요해


지난 3월 온라인상에서 매크로를 사용해 암표를 판매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공연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기존 암표 거래 제재 법안이 입구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시켜 주는 행위에 국한돼 온라인 암표 거래 처벌이 불가했던 점을 보완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백세희 변호사는 개정된 공연법은 매크로를 이용하는 암표 판매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매크로만 사용하지 않으면 제재할 방법이 없어 완전한 암표 근절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시점 가능한 보완책으로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상의 경우, 암표 판매로 얻은 이익을 몰수·추징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해 범죄 억제 효과의 증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윤동환 회장은 현재 기술로는 매크로 활용을 적발해 내기 어렵다며 법안의 실효성을 우려했다. 암표 거래 근절 방안에 대해 윤 회장은 먼저 암표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정상 가격보다 높은 금액에 거래되면 암표인지, 지정된 예매처 외 거래 시 암표인지 정의가 확립돼야 암표에 대한 법적 규정이 구체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개정된 공연법처럼 처벌 수준이 높아진들 적발해 내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티켓이 훼손되면 입장 불가하다.


백 변호사는 형사 처벌 이전에 암표 판매가 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암표 판매가 결코 사회적으로 승인될 수 없다는 대중적 공감이 이뤄져야 한다암표 판매가 간절함을 악용한 악질 범죄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지 않으면 팔지 않는다에 앞서, 암표 거래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적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매크로 프로그램 : 한 번 입력으로 특정 작업을 반복할 수 있도록 제작된 프로그램



·사진 | 황예지 기자 lifethine@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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