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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저는 늘 목말랐던 것 같아요. 사랑은 몰라서 못 했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 저를 꽉 채워줄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잘못 생각했어요. 채워도 채워도 그런 걸로는 갈증이 가시지가 않더라구요.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찬실의 극 중 대사다. 영화로 살아가는 이들, 영화를 위해 살아가는 이들, 세상에는 영화를 목숨보다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간, 바로 ‘독립영화관’이다.

수도권 독립영화관 총 ‘15곳’ 2007년 ‘인디스페이스’ 시작으로 늘어나 자본과 배급 유통망으로부터 독립해, 순수한 독립영화의 상영과 발전을 도모하는 상영관을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독립영화관)’이라고 부른다. 독립영화의 ‘독립’이 자본과 배급 유통망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만큼, 독립영화관 역시 광고 등 상업 영역에서의 자유로움을 꾀한다. 독립영화는 제작자 개인의 독자적인 예산으로 제작돼, 비교적 개성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다. 그만큼 초기의 독립영화는 상영관 수 확보에 실패해 대중이 쉽게 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독립영화만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7년 서울시 종로구에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한 것을 시작으로 독립영화관은 광화문, 연희동 등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차차 늘어났다. 현재 수도권에 존재하는 독립영화관은 총 15곳이다.


▲ ‘라이카시네마’ 전경과 상영관 내부 모습.


▲ 복합문화공간 ‘에무’에 위치한 북카페.

독립영화관 방문기 복합문화공간·씨네토크 다양한 프로그램 기자는 지난 18일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를 관람하고자 연희동에 위치한 ‘라이카시네마’에 방문했다. 라이카시네마는 최초의 우주개 라이카(LAIKA)를 기리며, 청춘과 동네를 위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발돋움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연희동 최초의 독립영화관이다. 여러 젊은 창작자들이 모인 복합 문화 공간인 ‘스페이스독’ 내부에 위치해 영화 관람 외에도 다양한 문화 체험이 가능하다. 라이카시네마의 티켓 가격은 1만 1,000원으로 평균 1만 4,000~1만 5,000원인 멀티플렉스의 티켓 가격과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다. 지하에 위치한 상영관 내부는 39석으로 일반 상영관에 비해 규모가 작았으며, 관람객 역시 기자를 포함해 5명 정도에 불과했다. 광고를 상영하지 않는 독립영화관 특성상 영화는 10시 정각에 바로 시작했다. 규모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돌비 애트모스(최신 객체기반 3D서라운드 음향 기술)’ 기술이 적용돼 영화를 즐기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라이카시네마’와 유사하게 종로구에 위치한 ‘에무시네마’ 또한 복합문화공간 ‘에무’에 속해있어 펍을 갖춘 공연장, 갤러리, 옥상정원 등 다양한 문화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특히 가장 위층에 있는 옥상정원에선 주기적으로 ‘별빛영화제’ 등의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되고 있다. 다음으로 방문한 ‘씨네큐브’는 최근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상영관 시설 개편이 이뤄진 만큼 다른 독립영화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컸다. 씨네큐브 관계자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지정한 연간 예술영화 비율인 60%를 훨씬 웃도는 90% 이상의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며 “특히 쉽게 접하기 힘든 단편 영화들도 상영하고 있어 꾸준히 찾는 관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당일 씨네큐브에서는 지난달 개봉한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와 관련한 씨네토크(GV)가 진행됐다. 이는 감독부터 영화평론가, 작가, 기자 등 다양한 게스트가 관객과 함께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씨네큐브뿐 아니라 많은 독립영화관이 마스터클래스 등 관객들의 보다 깊은 영화 체험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본교에서 가까운 신촌 지역의 독립영화관으로는 ‘필름포럼’과 이화여자대학교 내부에 자리 잡은 ‘아트하우스 모모’가 있다. 필름포럼은 특히 예술과 사랑에 초점을 둔 작품들을 주로 상영하고 있다. 또한 영화 상영 외에도 내부에 위치한 세미나실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서사 창작, 컬러 테라피 등 인문예술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필름포럼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포럼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영화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특히 학문의 요람인 신촌에 있는 만큼 청춘을 누리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방문해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워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 왼쪽부터 ‘아트하우스 모모’,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 중인 시네토크.

‘영화 도서관’ 시네마테크 숨겨진 영화 가치 재발굴하며 행복 느껴 독립영화관의 또 다른 기능은 ‘시네마테크’다. 이는 단순히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전 영화와 같은 가치 있는 영화 자료를 보존하고 대중에게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개봉작이나 상영이 종료된 영화 등 일반 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작품들을 재상영하기 때문에 숨겨진 영화의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현재 국내의 시네마테크는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KOFA)을 포함해 서울아트시네마, 부산 영화의전당 등 10곳가량이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더 많은 이들이 영화의 다양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시네마테크라는 극장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항상 고민한다”며 “고전부터 동시대 영화, 다양한 국가와 장르의 영화를 폭넓게 상영하는 것은 더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서울아트시네마는 최근 실험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프레임워크’, 한국 고전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고전은 새로워’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새롭게 기획했다. 이 밖에도 ‘영화’에만 국한하지 않고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 여러 주제의 강좌 프로그램을 마련하며,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돋움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독립영화관은 독립영화 지원사업에 따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극장에 광고와 매점이 없기에 대부분의 수익은 관객들이 구매하는 티켓을 통해 창출된다. 따라서 티켓값과 관객들의 후원금은 극장 운영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코로나19 등 여러 악재로 전반적인 한국 영화시장이 크게 위축되며, 독립영화와 독립영화관 역시 양난을 겪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영진위가 발표한 ‘202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 전체 매출액은 전년 대비 8.7% 증가한 1조 2,614억 원, 전체 관객 수는 10.9% 늘어난 1억 2,514만 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도와 비교하면 전체 매출액은 65.9%, 전체 관객 수는 55.2%가량 회복하는 데 그친 수준이다. 또한 흥행 양극화 심화로 인해 한국 영화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부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두 편의 천만 영화(<노량>, <서울의 봄>)가 나왔지만 이를 제외하곤 흥행이 부진해 전년 대비 매출액과, 관객 수는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 영화 매출액은 5,984억 원으로 전년 대비 5.2%(326억 원) 감소했고, 한국 영화 관객 수는 6,075만 명으로 전년 대비 3.3%(204만 명) 줄어든 수치다. 이러한 상황 속 독립예술영화 시장의 규모 역시 대폭 축소됐다. 지난해 전체 독립·예술영화 개봉 편수는 총 297편으로, 전년 대비 16.8%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한국 독립·예술영화 매출액은 전년 대비 6.4% 감소한 102억 원이었으며, 관객 수는 8.6% 감소한 114만 명으로 전체 관객 수의 0.9%에 그쳤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우리 극장의 경우 현재 영진위와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극장 임대료와 기본 운영비, 영화 상영료와 인건비 등을 모두 지원금으로 충당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임대료와 기본 물가, 해외 배급사에 지불해야 하는 영화 상영료가 갈수록 오르는 것이 극장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힘들다”고 전했다. 씨네큐브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전반적으로 줄었으나, 독립영화관을 사랑하고 꾸준히 찾아와주는 이들 덕에 아직까진 문제없이 버티고 있다”며 “그렇지만 더욱 많은 관객에게 영화 체험을 선물하기 위해선 정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글·사진 | 이나윤 기자 sugar03@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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