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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 ‘판소리 20시간 릴레이 프로젝트’ 현장. 

▲ 제1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 안내책자.


지난 7일과 8일, 세계판소리협회(세판협)는 판소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0주년을 맞이해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제1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올해 처음 열린 행사였다. 주요 프로그램은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이 이어지는 ‘판소리 20시간 릴레이 프로젝트’였다.


‘함께’하는 릴레이 프로젝트

생생한 울림 전해 나가


기자는 지난 8일 서울남산국악당을 방문해 행사를 관람했다. 크라운해태홀 지하 1층에서는 ‘판소리 20시간 릴레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심청가’를 공연한 무대에선 뺑덕어미가 도망가고 심봉사가 심청이를 그리워하며 자탄하는 대목이 한창이었다. 소리꾼은 심봉사가 심청이와 뺑덕어미를 찾는 모양새를 몸짓으로 흉내 내고 부채를 이용한 발림도 중간중간 섞으며 공연을 이어 나갔다. 북의 장단에 맞춰 일부 관람객들은 ‘얼씨구’, ‘얼쑤’와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흥겨워했다. 그 뒤로는 춘향가를 필두로 한 무대가 이어졌다.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춘향을 그리워하며 춘향 어머니를 다시 찾아가려고 고민하는 대목에서 관객들은 슬픔과 애잔함의 정서에 동화돼 ‘으이’, ‘암은’ 등의 추임새를 넣었다. 


페스티벌을 관람한 경기도에서 온 이 모(53) 씨는 “판소리를 직접 들어보고자 월드판소리페스티벌에 방문했다”며 “어릴 때 매체로만 접했던 판소리 문화를 현장에서 생생한 울림으로 전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세판협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제1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에서 외국인, 장애인, 다양한 계층의 판소리 전공자와 동호인이 한곳에 모여 전통음악인 판소리를 향유한 점이 가치 있었다”고 전했다. 


희로애락 담은 판소리 

19세기 기점으로 대중화


판소리는 세대를 거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로 자리 잡았다. 양반과 서민층을 아울러 전 국민이 향유하면서 발전해 온 문화라는 점에서 판소리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판소리는 2003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광대들이 벌이던 판놀음에서 시작돼 서민 중심으로 향유된 판소리는 19세기 중인층, 양반층으로도 전해지며 대중화됐다. 이 시기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6마당인 토별가(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박타령(흥보가), 적벽가,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은 판소리 전승의 기틀이 됐다. 이전에 전해오던 사설을 신재효가 양반과 서민적인 면을 아울러 독자적인 사설로 정리한 점이 특징이었다. 세판협은 “서민 중심으로 향유됐던 판소리는 남녀 간 애정, 풍자와 해학, 재담이 주를 이뤘으나, 양반 계층이 유입된 후에는 음담패설, 틀린 사설, 오탈자가 수정되면서 내용과 형식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판소리는 소리꾼, 고수, 구경꾼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정서적 교감과 소통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문화예술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구경꾼들과 자유롭게 소통해 흥을 북돋운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판소리의 사설은 그 내용이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어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판소리학회 최혜진 회장은 “판소리는 삶의 현실을 음악적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고 극적 너름새*로 전달해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소리꾼과 고수의 호흡도 판소리 공연의 묘미다. 노래, 말, 몸짓을 섞어 이야기하는 소리꾼을 따라 고수는 북으로 반주하여 장단을 맞춰준다. 소리꾼과 고수가 이끄는 공연판에 청중들도 추임새를 넣어가며 자연스레 참여하면서 공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하나가 된다. 『알기 쉬운 동초제 수궁가』 저자인 전북대 안동춘 교수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판소리는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과 영혼을 정화하고 승화시켜 오랜 시간 사회적 소통과 화합의 기능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대중과 호흡해 나가는 판소리 

창작활동과 교육 프로그램 필요해


학계에선 판소리가 현대인과 호흡해 나가는 문화예술로 자리잡기 위해 현대 예술과 접목해 창작하는 활동이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그동안 판소리 부문에서 현대 대중음악과 융합된 창작활동을 통해 판소리가 대중화와 세계화에 다가섰다는 호평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 예로 인디 밴드 ‘이날치밴드’는 수궁가를 재해석한 현대 판소리 노래인 ‘범 내려온다’로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룩 노래’를 수상한 바 있다. 소리꾼 이자람의 경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전통 판소리 어법으로 재창작해 주목받았다. 판소리학회 최 회장은 “전통 판소리를 후대에 전승하는 동시에, 현대인의 정서를 반영한 창작물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젊은 세대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힙한’ 장르로의 변화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판소리를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일반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떠오른다. 안 교수는 “(판소리) 장면에 맞는 전문가 해설 프로그램을 보며 일반인들이 판소리를 쉽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아름다운 우리말로 이루어진 판소리를 찬찬히 이해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전통 문화예술 참여도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세판협은 “교육 프로그램과 관련해 통일된 교안을 개발하고 세종학당과 문화교류사업을 진행하는 등 판소리 기초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사진 | 이가람 기자 fksp1108@sogang.ac.kr


*너름새 : 판소리에서 소리의 극적인 전개를 돕기 위해 몸짓이나 손짓으로 하는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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