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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배리어 프리’ 특집 ② 영화 편 - 낯섦이 익숙함이 되기 위해, ‘배리어프리영화’ 같이 볼래요?


'배리어 프리(Barrier-free)'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제거하자는 운동이다. 오늘날 배리어 프리는 문화예술 분야로 확장되며,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배리어 프리' 문화예술에 관해 749호와 이번호, 두 차례의 문화면에 걸쳐 알아봤다.

<편집자 주>


“자동차 룸미러에 가족사진이 매달려 흔들거린다. 온유는 조수석에 앉아 흥얼거리며 곰인형을 매만지고, 윤은 그런 온유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조수석 창문을 열어준다.”

책의 한구절이 아니다. 이는 실제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이다. 해당 목소리는 배리어프리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오프닝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영화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해설’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음성해설)’을 동시에 제공하는 영화를 의미한다. 자막해설은 ‘한글 자막(CC, Closed Caption)’을 활용해 영화의 대사뿐만 아니라 화자의 이름, 배경 음향 등을 모두 표시하는 것이다. 화면해설은 자막과 함께 성우의 음성(AD, Audio Description)으로 음악, 효과음,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등 모든 시각적 요소를 해설한다. 배리어프리영화는 기존의 영어 명칭이 어렵다는 의견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시각장애인협회, 농아인협회가 개최한 네이밍 공모를 통해 2005년 ‘가치봄 영화’라는 정식 명칭을 얻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배리어프리영화라는 명칭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 공동체상영·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각종 노력 기울여


배리어프리영화는 이미 제작된 영화와 배급계약을 맺고 해당 영화에 화면해설용 대본, 성우의 더빙, 사운드 믹싱 작업 등을 덧씌우는 형태로 제작된다. 현재 국내에서 상영되는 대다수의 배리어프리영화는 사회적 기업인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제작하고 있다. 2022년 12월 기준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가 제작한 배리어프리 한국 영화는 총 59편, 외국영화는 총 45편이다. 제작에 필요한 비용은 효성그룹을 포함한 다수 기업의 후원과 위원회의 자비로 충당한다. 이렇게 제작된 배리어프리영화의 대표작으로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우리들’, ‘벌새’ 등이 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은경 실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본 위원회에서 배리어프리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 배포 및 교육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며 “화면해설 대본 제작과 성우 섭외부터 사운드 믹싱까지 여러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고 전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매달 배리어프리영화 상영 일정을 공지하고 있다. 해당 홈페이지를 통해 매월 넷째 주 목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상영되는 배리어프리영화 정보는 물론, ‘작은영화관기획전’, ‘가치함께시네마’ 등 배리어프리영화를 상영하는 전국의 모든 영화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서울역사박물관과의 협력하에 2015년부터 서울역사박물관 내부에 배리어프리영화관을 운영해 오고 있다. 오는 11월 23일에는 영화 ‘멍뭉이’의 상영이 예정돼 있다.


이 밖에도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공동체상영’,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실장은 “공동체상영은 복지관, 작은영화관 등 단체 관람을 요청한 곳에 배리어프리영화를 대여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통합학급에서도 장애이해교육의 일환으로 교육 상영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올해로 13회를 맞이하는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의 경우 2011년부터 매년 11월마다 개최되고 있으며, 평균 20~30편가량의 작품이 출품된다. 이 실장은 “해당 영화제는 배리어프리영화를 비장애인도 함께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것”이라며 다가오는 11월 7일부터 5일간 개최되는 2023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에 많은 이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 KOBAFF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배리어프리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한 장면.


| 극장 점유율 여전히 3% 미만

| 멀티플렉스 “상영관 늘리기 어려워”


이처럼 여러 노력에도 배리어프리영화의 점유율은 낮은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3대 멀티플렉스(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상영 현황을 확인해 보면 일반 영화는 약 530만 회 상영됐지만, 가치봄 영화는 419회 상영됐다. 일반 영화가 1000회 상영될 때 가치봄 영화는 1회 상영된 셈이다.


이 실장은 배리어프리영화의 멀티플렉스 상영률이 저조한 이유에 관해 “일반 극장에선 배리어프리영화의 화면해설이 영화 음향에 묻히는 경우가 많고 대관료도 비싸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의 날 등 특별한 날이나 영진위의 후원하에 시사회 형식으로 가끔 상영한다”고 전했다. 이어 “비장애인 관객분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에 장애인 단체들은 멀티플렉스 3사를 상대로 2016년부터 시·청각 장애인들의 영화관람권 차별 구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장애인 단체의 손을 들어주며 300석 이상의 좌석을 가진 멀티플렉스 내 1개 이상의 상영관에서 영화 상영 시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이에 상영업자들은 판결에 불복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본보에 “배리어프리영화 상영과 관련한 표준화된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고, 배급사와의 이해관계도 얽혀있어 보급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판결은 마지막 심사를 남겨두고 있다.


| 2023부국제 배리어프리영화 관람기

| 혼잡한 동선·부족한 송수신기


매년 개최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BIFF)에서도 배리어프리영화 상영이 진행된다. 지난달 4일부터 열흘간 개최된 ‘2023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총 10편의 배리어프리영화가 상영됐다. 기자는 지난달 9일 영화제에 방문해 배리어프리 영화를 감상해 봤다.


기자가 관람한 영화는 ‘비공식작전’으로, 모든 배리어프리영화는 해운대구에 위치한 CGV센텀시티에서 상영됐다. CGV센텀시티는 신세계백화점 7층에 위치해 있었고, 백화점 내부의 규모가 크고 이동 동선이 복잡해 승강기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더불어 영화제 당일 많은 인원이 몰려 인파를 뚫고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표시나 휠체어 이용객의 이동을 위한 공간 확보는 부재했다.

부국제는 장애인 관람객이 배리어프리 송수신기를 통해 화면해설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폐쇄형 화면해설’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화면해설이 모두에게 들리는 오픈형 화면해설 방식과 달리 필요한 관객에게만 기기를 제공해 비장애인과 함께 관람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자가 데스크에서 송수신기를 받으려 하자, 관계자는 “남은 기기가 없다”고 말했다. 배리어프리 송수신기가 사전에 예매한 시각장애인 관람객의 수만큼만 준비돼 있어 당일 예매 관객이나 비장애인 관람객은 여유분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송수신기 사전 신청에 관한 어떠한 안내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더불어 관람객에게 제공되는 송수신기는 볼륨 조절이 불가한 헤드셋 형식이었다. 줄 이어폰 형식과 달리 헤드셋은 한쪽을 뺄 수 없고, 볼륨 조절도 불가해 영화관의 소리와 화면해설 소리 둘 다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요청 시 영화제 스텝들에 의해 상영관 자리까지 안내받을 수 있었고, 티켓 수령 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책자가 함께 배부되는 점 등은 편리했다.


지난 7월 5일 영진위는 국내 멀티플렉스 3사, 배급사 5개사, 한국농아인협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시각·청각장애인 차별 없는 영화 관람 환경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실장은 “배리어프리영화의 대중화를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코로나 시기 OTT 플랫폼에서 자막이 익숙해진 것처럼, 배리어프리영화 또한 특별한 영화가 아닌 모두에게 당연한 영화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대로 '제 13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 포스터, 부국제 점자팜플렛, 배리어프리코너가 마련된 부국제 홈페이지.


글·사진 | 이나윤 기자 sugar03@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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