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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정부가 발표한 전국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따라 시작된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의료대란 7일째, 사직한 전공의 수는 1만 명이 넘으며 이는 전체의 80.5%에 해당한다. 더불어 100개 수련병원에 대한 점검 결과, 지난달 29일 기준 결근한 전공의는 소속 전공의의 72%에 해당하는 8,945명에 달했다.


│‘집단사직 러시’ 벌써 보름째

│응급실 뺑뺑이·군 병원 이송 등 문제 많아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보름째 이어진 가운데, 이탈한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던 전임의까지 업무 과중으로 의료현장을 떠나며 의료 공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대전에서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80대 심정지 환자는 한 대학병원에 도착해 사망 판정을 받았으며,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은 50대 환자는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돼 수술받기도 했다. 병원 이송에만 2시간 이상 걸리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지난달 26일 전공의들에게 신속히 현장으로 복귀할 것을 요청하며 복귀 마지노선을 29일로 공표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 4일부터 ‘긴급 대응 응급의료상황실’을 가동하며 서울과 대전, 대구, 광주 등 4개 권역에 사무실을 설치하고 응급환자의 상태에 따라 병원 배정과 이송을 신속하게 조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수진, “정부 일방적 결정은 위헌”

│의대 개강일 무기한 미뤄져


정부가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시행한 의대 정원 수요조사 마감 다음 날,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나 삭발식 등의 반발이 이어졌다. 


지난 5일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은 대학 측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며 의대 앞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강원대 의대 심장내과 A 교수는 본보에 “교수진 77% 이상이 의대 증원 반대 의사를 표명했으나, 학교 측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정부의 일방적인 방침은 위헌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조선대 의대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이 모(25) 씨 역시 학교에 나가지 않은 지 18일째다. 본과 2학년의 경우 2월 19일이 개강 예정일이었으나, 의대생들의 집단휴학으로 개강일이 이달 4일로 연기됐다. 그러나 연기된 개강일에도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씨는 “당장 의대생 2,000명을 증원한다고 해도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의사 양성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현재 조선대 의대생 625명 중 600명 정도가 휴학계를 냈으며, 개강일은 무기한 미뤄진 상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제출된 유효한 휴학 신청 건수는 누적 5,401건에 달한다. 이는 전체 의대 재학생(1만 8,793명)의 28.7%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나 이는 정식 휴학 절차를 밟은 수치만을 집계한 것이기에,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휴학을 신청한 이들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 공백 해결 시급

│환자 생명 우선돼야


현 상황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날이 심화되는 의료 공백이다. 보건복지부는 5일 기준 이틀째 현장 방문을 통해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며, ‘최소 3개월 면허정지’ 등 행정 처분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해당 처분을 받게 되면 전공의 수련 기간을 채우지 못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시기가 1년여 미뤄지고, 면허 취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서울 시내 수련병원 관계자는 “아직 전임의가 전공의만큼 빠진 상황은 아니지만, 레지던트들과 인턴이 들어오지 않고 전임의마저 업무 과중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전했다.


올해로 30년째 의료 현장에 몸담고 있는 정의찬 흉부외과 전문의는 “이번 사태는 기존 의료시스템의 허술함과 우리 사회의 일부 직업군에 대한 과한 특권 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라며 “당장 이탈 전문의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이들의 업무 과중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고 제언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4번째 항목은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다. 정 전문의는 “의사 역시 본인의 병원을 개원하면 자영업의 길을 걷게 되고, 사람이기에 경제적 유혹 앞에 흔들리는 순간도 분명히 존재한다”며 “그러나 사람의 생명을 대하는 직업을 선택한 만큼, 처음 의사가 됐던 그 순간에 내 손과 입으로 선언한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은 지켜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글 | 이나윤 기자 sugar03@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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