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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한국도시연구소는 주거취약계층이 기후위기로 겪는 주거 문제의 심각성과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한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모두가 겪는 기후재난마저 불평등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기후위기가 드러낸 불평등

│그들에겐 안전하지 않은 ‘집’


기후위기는 한파, 폭염, 폭우, 산불 등 다양한 형태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공평하게 재난을 나눠 겪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약자에게 기후위기는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취약계층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기후재난 상황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 지난 2022년 서울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발생한 신림동 반지하 참사는 그 사실을 참혹하게 보여줬다. 반지하에 살던 세 모녀는 차오르는 빗물에 방범창을 뚫고 집을 탈출하려 했지만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당시 수해 참사 희생자는 세 모녀를 비롯해 모두 기초 생활 수급 가구였다.


비적정 주거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에게 집은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다. 지·옥·고(지하, 옥상·옥탑, 고시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적정 주거다. 집은 추위와 더위 등 혹독한 외부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만, 기후위기 상황 속 그들에게 집은 탈출해야 하는 곳이 된다.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는 김 모 씨는 자신의 집이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여름에는) 폭염 때문에 집에 못 있어요. 낮에 서울역 대합실에 갔다가 저녁에 그냥 거기서 자고 그랬죠. 집은 정말 편안해야 하고 나의 안전을 지켜줘야 하는데, 스스로 집에서 나와요. 더 이상 집이 아니죠.”


신림동 지하 주택에 거주했던 유 모 씨는 집이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비만 오면 불안했죠. 바퀴벌레도 우글거리고, 습기는 말도 못 해요. (집에 있으면) 지하의 습기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져요.” 유 씨는 수해 참사 발생 후 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만 있으면 여전히 불안하다. “어젯밤에도 비가 쪼록쪼록 왔는데 제가 신림동 지하에 살던 기억이 남아서 그런지 잠이 안 오더라고요. 거기 있을 때 물이 찼던 기억 때문에요.” 기후 재난은 이들에게야말로 정말 재난이었다.


 

│반복되는 기후재난

│제자리걸음인 정부 대응


그러나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한국도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은 7개 항목 중 6개 항목이 3점(보통) 미만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특히 ‘재난피해자 일상회복 지원’에 대한 평점은 2.17점으로 ‘부정 평가’ 비율(61.2%)이 7개 항목 중 가장 높았다. 


2022년 반지하 참사 발생 후 정부와 서울시는 지하 주택 거주 가구의 이주를 지원하기 위한 주거지원 대책과 ‘반지하주택 일몰제’를 통해 순차적으로 지하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피해예방 및 주거지원 대책은 거의 작동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참사 발생 후 1년이 넘도록 참사가 발생한 신림동의 지하 주택과 인근 지하 주택들은 방치돼 있었다. 또한 동작구 상도동에서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지하 주택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인근에는 이와 유사한 구조의 건물이 다수 존재했다. 관악구 지하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박 모 씨는 “당시 침수피해를 당하고도 또다시 다른 반지하로 이사를 했다”고 밝혔다. 피해 발생 후 2주간의 단기 임시 주거지원 외에는 다른 지원을 안내받지 못해 지하 주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난·안전 전문가 이 모 씨는 “2022년의 침수피해는 2010년과 2011년의 피해지역과 거의 동일하다”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도 재난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비적정 주거 가구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대책은 ‘공공임대주택 공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도시연구소의 조사 결과 공공임대주택의 재고가 부족해 이미 신청서를 제출한 가구에 대한 공급도 지연되고 있었다. 또한 전세금을 지원받고 개인이 민간임대주택에서 매물을 찾는 전세임대주택의 경우 지하 주택을 임차해 거주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전세임대에 선정된 지하 주택 거주자 장 모 씨는 “LH전세임대에 선정돼서 집을 알아보는데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원해 주는 보증금으로는 공인중개사에게 가도 (비적정 주거 외에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현행 제도에는 지하 주택처럼 주거 품질이 열악한 주택을 임차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가 없고, 지원 한도액이 낮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게다가 한국도시연구소의 조사 결과 비적정 주거 가구의 95%는 이러한 주거지원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글 | 박주희 기자 juhui1120@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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