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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수능장

적성불문 성적 좋으면 의대행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올해 수능에선 유독 졸업생 응시자(n수생)가 많았다. 총 응시자 가운데 졸업생 응시자는 31.7%로, 이는 1997학년도 수능 이후 최고 수치다. 입시판에서 n수생 비율이 급증한 요인 중 하나로 ‘의대 쏠림’이 지목된다. 의대 합격권에 진입하기 위해 입시에 몇 년 더 투자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전국 국립대 의대에 정시전형으로 입학한 1121명 가운데 n수생은 911명(81.3%)에 달했다. 


일부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무관하게 뜻하지 않은 의대 진학을 권유받기도 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의과대학 학생 A씨는 학창 시절 공과대학으로의 진학을 꿈꿨다. 그러나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며 부모님, 선생님 등 주변인들로부터 지속적인 ‘의대 진학’ 압박에 시달렸다. 그는 “의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고려해 본 적 없는 분야였다”며 “의학 계열을 목표로 노력해 오던 동기들보다 관련 상식이나 진로 계획 측면에서 많이 뒤떨어지고 있단 느낌을 받는다”고 털어놨다. 입시 현장에서 의대쏠림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 묻자 그는 “진학 후 고소득의 전문직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안정성”이라고 답하며  “(이렇다 보니) 성적이 좋으면 적성은 묻지도 않고 의대를 권유받는 사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공식화

추가 양성된 의사들이 의료 공백 채울까




현재 우리나라의 필수·지역의료 공백은 심각한 수준이다. 수도권 및 일부 진료과로 의료인력이 쏠린 탓이다. 의료계에서 ‘서울 쏠림’이 끝도 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의사 밀도는 OECD 회원국 38곳 중 32위로 최하위권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전체 의사 공급이 수요보다 적은 상황에서, 의사들의 평균 임금은 높게 책정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들의 근무지를 결정짓는 건 경제적 보상보다는 업무 강도나 주변환경 등의 여건이 된다. 실제로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서울 의료기관 전문의 연평균 소득은 2억 2413만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낮았다. 또한 필수의료에 해당하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는 외면받고 수익성이 높은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으로 의사들이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의사 수가 부족한 지역·필수의료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추가 양성된 의사들이 필요한 곳으로 유입되지 않는 이상 의대증원은 의미없는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는 김대연 씨는 이에 대해 “의대 정원이 늘어도 지역 및 전공별 균등한 분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의사들을 강제로 각 지역에 분배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기피 과목) 산부인과 의사의 입장에서 현재 분만이 줄어 일이 없는 곳에 의사를 배치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한 명의 산모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 분만시설을 지역에 배치하는 것이 비용 및 효용의 측면에서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의대 증원에 따라) 의사 수가 늘어나는 만큼 의사 한 명이 받는 평균수입은 줄게 돼 의대편중현상은 완화될 것”이지만 “반대로 줄어든 수입을 보충하고자 불필요한 검사 및 시술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의대 증원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의료계 쏠림 현상

기존과 다른 양성체계 필요해


적성 불문 고소득을 쫓아 의대가는 학생, 그리고 수도권 및 인기 진료과로 쏠리는 의사들까지. 공공성이 근절된 의료계의 일면이다.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 양성된 의사를 필요한 지역에 공급하려면 결국 의료계의 ‘시장 논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현재 의사 인력의 이동은 자발적인 지원자없이 지역·필수의료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할 수 없는 시장 논리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엄청난 가격으로 유인하는데도 소용이 없단 것은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의사 수가 늘어나고 인건비가 떨어지면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에 가려는 의사는 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의대 입학정원 정책만으로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비시장적인 방법으로 의사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않는 한 의사들을 지역·필수의료 영역에 머물게 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을 해결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연고가 있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배출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 의대 김윤 교수는 “지방 의과대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이유는 그 학생들이 원래 수도권 출신이기 때문”이라며 “지역인재특별전형 확대와 같은 보완책을 통해 지역 출신 학생들이 지역에서 일하는 비율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필수의료를 제공하는 의사에게 보상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신지우 기자 jiwoo8155@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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