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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투타 겸업을 제안해서 파이터스를 선택한 거죠. 그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때까지는 저를 타자로서 고려하는 팀이 없었어요. 그런데 구리야마 감독님은 둘 다 해보라고 하셨고 한 번 시도해 봐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대화가 시작됐어요. [오타니 쇼헤이 - 비욘드 더 드림 (2023)]


오타니 선수는 투타 겸업을 하게 된 것이 당시 닛폰햄 파이터스에서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의 제안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부분이 됐다. 오타니 선수가 어렸을 때부터 큰 꿈을 꾸었고 그걸 이뤄온 것으로 알려진 만큼, 투타 겸업도 당연히 처음부터 그의 아이디어였을 줄 알았는데.


어릴 적 국어 시간에 배운 영웅 설화의 구조가 생각났다. 기이한 탄생, 비범한 능력, 그 후 고난이 생기지만 조력자를 만나 해결, 위기 극복 후 성장. 그런 거였다. 여기서 ‘조력자의 등장’이 있다는 게 의아했다. 영웅으로 불릴 만큼 대단한 사람의 삶조차 조력자의 등장이 필연적이라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라면 그냥 혼자서도 모든 걸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가, 한때는 누군가의 아이디어 제시나 조언, 피드백을 받는 것이 나의 부족함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걸 왜 난 몰랐을까’ 라는 생각에 내 능력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다. 대체 언제쯤이면 나도 처음부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한탄했다.


그런데 오타니 선수의 다큐멘터리에서 이 부분을 보고, 이렇게 역사적인 선수도 결국 결정적인 아이디어는 타인에게서 받았다는 것에 충격과 위안을 받았다. 삶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조력 받으면서 성장해 나가는 부분도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개인의 노력과는 별개의 부분인 거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려는 마음가짐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대신 삶의 찾아오는 귀인이 나를 이끌어 줌에 매번 감사하면서,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민희 (컴공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