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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논술시험이 있다고 온 학교에 붉은 휘장이 걸렸다. 휘날리는 휘장들을 바라보며 걷다가 2년 전 나의 논술시험이 떠올랐다.


2년 전 나는 36명을 뽑는 논술전형에 지원하였고 3,083명이 그 전형에 지원하며 85.64:1의 경쟁률을 마주하게 되었다. 85명 중 1명에 들어야 하기에 나는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수십차례 다짐했다. 기대했다가 떨어지면 다치는 건 내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달리 손은 자꾸 최저충족률과 실질 경쟁률에 검색하고 있었고 나의 가능성을 계산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름 잘 썼다고 생각한 논술 답안 역시 내 머릿속에선 쓰레기가 되었고, 생각보다 낮은 수능성적은 저릿한 불안감이 되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속은 잔뜩 썩어가던 이때, 나는 겉으로는 “설마 내가 붙겠어. 경쟁률이 85대 1인데.”라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떨어지면 “거봐, 그럴 거라고 했잖아.”라며 합리화할 길을 만들어 둔 것이다. 경쟁률을 말하며 자위하던 내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경쟁률 다 의미 없어. 세상에 확률은 딱 한 가지야. 50%. 된다, 아니면 안 된다. 딱 반반.”

그 말이 참 와닿았다. 저 경쟁률을 확률로 환산하면, 1.17%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 경쟁률은 “나”의 확률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 논술은 50%의 가능성이었다. 모든 경쟁률을 우습게 만들어 버리는, 50%의 가능성. 나의 논술시험에서 절반의 가능성은 감사하게도 “된다”로 빛을 발했다.  언젠가 “안 된다”의 방향으로 작용하더라도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경쟁률을 탓하며 나의 발전에 안일하기보다 50%의 확률을 이겨내지 못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테니.


나는 모든 가능성을 50%로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낮은 가능성에 짓눌려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너무 높은 가능성에 자만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절반의 가능성이다.


오현주 (경영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