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눈 감았다 뜨면 시시각각 변해 있는 세상이다. 어제는 딱딱한 콘크리트 같았던 땅이 오늘은 늪지대라 발을 내디딜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곳에 정착하기에는 그 땅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어 몸 하나 뉘일 곳 없다는 서러움에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남들보다 빠르게 누구와는 다르게, 개인적으로는 그 무게에 비해 너무 가볍게 쓰이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용되는 보통, 평균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조차 버거운 현실이라 우월함을 갖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린 모두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려나간다. 한참을 달리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뛰려는데, 무언가에 묶인 듯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순간 옆으로, 위로 뭔가가 빠르게 지나간다. 숨을 참은 채 목표를 좇아 빠르게 달려가는, 날아가는 타인들이다. 멈춰 있는 나를 쌩 지나가는 이들은 멀어지며 그 크기가 점점 작아진다.

 

나는 이곳에서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물음을 던져 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용을 써서 도약을 꾀하지만 부동인데, 곧이어 불안감이 몸을 엄습한다. 다시 움직일 순 있는지, 움직인다 해도 피니시 라인까지 내가 달려갈 순 있는지, 이미 남들보다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다음은 분수에 맞지 않는 과도한 목표를 세웠나 하는 자아비판의 단계로.

 

거기까지.

 

구태의연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를 벗어난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슬로우 스타터라는 말이 있다. 전성기가 남들보다 늦게 찾아올지언정, 끝까지 느리란 법은 없다는 뜻이다. 도약을 위해 수그리는 높이가 남들보다 낮다면, 더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는 법. 이들은 지난하지만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살아가야 한다. 당장 눈 앞에 놓인,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하며 슬럼프의 바다를 가로질러 나와야 한다.

 

빛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본인의 빛이 비교적 어두워 보인다 할지라도, 설사 전혀 빛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무너지지 말자. 내가 써 내려가는 문장의 마침표처럼 보여도 그 모양은 끝이 살짝 튀어나온 쉼표이니까. 이는 잠깐의 멈춤일 뿐 끝이 절대 아니라는 의미다.

 

조민형 (기계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