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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나 하나 해볼까 하며 모집 공고를 둘러보다 서강학보에 지원해 덜컥 기자가 돼버린 지 벌써 한 학기가 넘었다. 사실 나는 글 쓰는 것도,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는 기자다. 매번 새로운 취재원을 만나 긴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가 졸필에 내향형 인간이니, 그 처음은 꽤나 힘들었다.


첫 전화 컨택을 앞둔 나는 대본까지 적어놓고 종이 한 장에 겨우 의지하며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부끄럽지만, ‘학생이니까 귀엽게 보고 취재에 응해주시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갖고 있었다. 나는 ‘진짜 기자’가 아니니까 잘 못해도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줄 거라는 어린 생각도 했다. 하지만 컨택이 쉬운 일이 아니듯 나는 거절당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학생이 상처받았을까봐 잘 달래주시기까지 한 따뜻한 거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울어버렸다. 그 모든 과정이 당황스럽고 힘들었던 것 같다.


나의 어린 마음을 단단하게 해준 것은 아버지의 뼈아픈 충고였다. 첫 실패를 겪고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위로 대신, “그런 마인드로 시작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무슨 일을 하던 스스로를 프로패셔널하다고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고 조언하셨다. 맞다. 나는 나조차도 스스로를 기자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상대방도 나를 그저 ‘학생’ 기자로만 보는 게 당연했다. 그 이후로 나는 진정한 기자가 됐다.


기자 일을 하면 각자의 삶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며 많은 것을 배운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끝까지 투쟁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70대의 나이에도 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번 호에서 만난 치매 어르신 김운자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원이다. 할머니의 인생사를 듣고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하며 울어봤다. 할머니가 헤어지면서 해주신 말이 가끔 생각난다. “기자님 큰 사람 되세요.”


기자 활동을 통해 얻는 가장 소중한 배움은 그들의 이야기가 내게 남겨주는 고민의 시간들에 있다. 힘들고 도망가고 싶다가도, 이렇게 내가 겪어 나가는 시간들이 나를 더 채워갈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잘 해내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니 기자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큰 사람 되겠습니다. 


박주희 기자 juhui1120@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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