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 제가 함께 깨어 있고 싶습니다.’ 뻔뻔하리만큼 당당한 포부를 들고 서강 학보의 기자가 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아직도 서강 학보에서 나는 참 작고 부족한 점 많은 신입이다. 특히 지나칠 정도로 팩트에만 기울어져 ‘사람’을 놓치는 기사를 쓰지 않았는지에 대한 반성이 컸다. 두 눈 감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는 언론인이 되고 싶어 학보를 지원했건만, 이런 강박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귀중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을 깨닫게 된 데에는 독자인 주변인들의 도움이 컸다. 가족들에게 서강 학보 기자로서 참여한 첫 르포를 자랑스럽게 건넸을 때, 아버지는 내게 '너무 건조하지 않니?' 한마디를 던지셨다. 그러고 보면,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선배님이 쓰신 부분에 비해 내 문장들은 참 허전해 보였다. 기사의 풍성함이나, 완결성 같은 부분에 있어 분명 아쉬운 점이 있었다. 취재한 내용을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능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중요한 퍼즐을 놓친 탓이 컸다. 인터뷰를 요청해도 가는 질문이 형식적이니 오는 답변 역시 피상적인 게 당연했다. 사실 나열만이 기사가 아님을, 그제야 깨달았다. 쓰는 이는 읽는 이를 위해 존재한다. 기사 속 내 인사이트는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었나. 독자의 세계를 넓히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몰입조차 어렵게 하진 않았는가.


고민에 잠긴 사이 어느새 다음 호가 다가왔다. 첫 단독기사라는 막중한 역할이 내 손에 맡겨졌다. 이번에야말로 기사에 우리, 즉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담고 싶었다. 그렇게 선택한 주제가 바로 '생일 카페' 문화였다. 팬들이 가진 순수한 애정의 가치가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취재를 간 곳에는 전엔 본 적 없는 놀라운 풍경이 가득했다.  나이, 성별 등 겹치는 것 없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오직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축하를 위해 한 곳에 모여 기쁨을 공유하고 있었다. '기자님도 한 장 뽑아보세요.'라며, 직접 뽑은 폴라로이드들을 섞던 주최자님의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놀라운 에너지와 환대를 체험한 뒤 작성한 기사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재밌게 읽히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아 좋다는 평, 전혀 알지 못했던 문화를 알게 되었다는 평 등 주변에서 긍정적인 코멘트가 이어졌다. 다시금 팩트 이상의 의미를 발굴해 내는 기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는 경험이었다. 아직 흐릿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에는, '이야기의 가치'에 공감하는 '진심'도 필요하다는 것을.


부지희 기자 orcaboo@sogang.ac.kr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