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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도서관 작공 교사 장 보 성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 위기청소년들을 따스하게 맞아주는 대안 교육기관 청소년 도서관 ‘작공’에는 언제나 그곳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장보성 선생님이 있다. 13년째 작공에서 청소년들의 ‘어른 친구’가 되어주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사진 | 한수민 기자 tnals617@sogang.ac.kr

 

부유하는 삶에서 뿌리내리는 삶으로


장보성 교사는 작공을 만나기 전 부유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캠퍼스에 최루탄 가루가 뿌옇게 흩날리던 80년대, 도스토옙스키가 좋아 러시아 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선배들과 함께 ‘이름도 촌스러웠던’ 진보문학회에서 시와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다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담긴’ 영화에 빠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반 동안은 독립영화계에서 일했으며,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대학원에서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와 연애했죠. 그러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에게 반해서 30대 후반에 불어도 할 줄 모르는 채 프랑스로 유학을 갔어요.” 그는 그렇게 들뢰즈가 살았고, 강의했던 그곳에서 7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불어와 영화를 공부했다.


‘틈만 나면 바깥으로 뛰쳐나갔던’ 그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며’ 살게 된 건 우연한 기회로 작공에 교육 봉사를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은평구에 살고 있던 친구들의 소개로 작공에 대해 알게 됐고, 작공에서 일할 교육 봉사자가 부족하니 아이들을 가르쳐보라는 제안을 받게 됐다. 그가 제안을 거절한 이후에도 가르칠 사람이 없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와 어쩔 수 없이 그는 작공을 찾았다. 당시 작공은 재개발 후보지였던 역촌 중앙시장에 있었다. “초라한 유리문을 열면 아이들과 마음씨 따뜻한 ‘엄마 활동가’들이 있었죠. 공간이 어찌나 낡았던지 70년대 영화 세트장 같더라고요.”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그날을 기점으로 13년이나 작공에서 머물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청소년들과의 첫 만남, ‘맘잡은 깡패 신화’를 쓰다


장 교사가 작공에서 처음 만난 청소년들은 학교의 ‘애물단지’로 취급받는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불량하다고 고개를 내젓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장 교사에게 마음을 내어주었다. 공부에 전념할 수 없었던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선생님,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청소년도 있었다. “첫날부터 제 눈에는 아이들이 너무 예뻤어요. 목소리도 씩씩하고. 그런데 말끝에 비릿한 씁쓸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들 마음에 슬픔이 자리하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생각보다 수업을 잘 따라와 주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맘잡은 깡패 신화 한번 써보자고 했죠.” 장 교사는 딱딱한 개념어 대신 삶에 빗대어 영어를 가르쳤다. “‘내 마음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간 그녀, 몇 인칭일까?’ 이렇게 인칭을 가르쳤어요.” 팝송 ‘let it be’를 함께 부르거나, ‘loneliness’라는 단어를 설명하며 각자의 외로움을 털어놓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의 이름만 부르는 일이 없었다. “‘지난번에 잘 가라는 인사에도 쌩하니 돌아서 선생님을 걱정시킨 누구야, 다음 문장 읽어볼래’라는 식으로 호명했어요.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까지 선생님이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을 진정으로 좋아하면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그렇게 그가 처음 만났던 청소년들은 사고를 치지 않고, ‘무사히’ 학교를 다녀주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대학에 진학한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 덕에 뿌리 내리고 살게 됐어요.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바람처럼 떠돌아다니지 않았을까요?” 그는 웃음 지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


그는 지금까지 작공에서 자립준비청년,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 등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 위기청소년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주는 ‘어른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에 응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지치기보다 그저 기다려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아이에게 준 사랑을 아이가 보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이는 언젠가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보답하며 살아갈 테니까요.” 그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깨닫고, 자기 삶을 변화시킬 때 가장 뿌듯하다. “아이들이 그렇게 본인의 의지로 삶을 변화시킬 때까지, 밥을 달라고 투정 부리고,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청하고, 아이를 질책하지 않으며 본인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장 교사는 그러한 작공에서 늘 ‘어서 와, 밥은 먹었니?’하고 청소년들을 따스하게 맞아주고 싶다고. 


‘마음으로 보듬어야 할’ 상처 깊은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13년을 돌아보며 그는 청소년들의 크고 작은 사고를 수습하던 나날들을 전했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의 ‘보석 같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였다. “자기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노력하는 아이들의 보석 같은 마음을 볼 때 지친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져요.”


그가 작공에 내린 깊고 튼튼한 뿌리는 단단한 나무로 자라나 수많은 청소년의 버팀목이 되어,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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