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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시계를 봤을 때 4시 44분이었는데, 오늘 오후에도 무심코 시계를 보니 4시 44분을 가리키고 있다. 혹시 ‘불길하다’고 생각했는가? 한밤중 벽에 걸려있는 옷가지를 보며 낯선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창가에 비친 나뭇가지를 누군가의 손가락으로 착각해 흠칫 놀란 적이 있는가? 일상 속의 평범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떠올리는 것, 이는 ‘아포페니아’라고 하는 심리 현상의 일종이다. 



│무작위 속에서 규칙 찾는 ‘아포페니아’


아포페니아(Apophenia)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현상들에서 패턴을 찾아내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별자리부터 전기 콘센트에서 사람의 얼굴을 찾는 것, 보름달을 보며 그 안에 있는 토끼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모두 아포페니아의 사례다. 아포페니아는 비단 시각적인 형상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거꾸로 들으면 악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은 청각 자극에 의한 아포페니아며 지진이 나기 전 동물이 대이동한다는 것, 비가 오기 전 개구리가 운다는 것 등의 속설들도 모두 아포페니아의 일종이다. 이 중에서도 무작위적인 자극 속에서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과 같이 시각적으로 익숙한 형상을 찾고자 하는 심리를 파레이돌리아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포페니아는 대부분 파레이돌리아에 해당한다. 


│뇌의 본능적인 인지편향, 그럴싸한 오류 


아포페니아는 인지편향*의 일종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뇌의 본능적인 활동이다. 프로이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Gustav Jung)에 따르면 아포페니아는 ‘확증 편향’, ‘동시성 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이 기존 가지고 있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인간의 본능적 경향이다. 동시성 원리(Synchronicity)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개체들이 각자의 의지와 방향성을 갖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분리되지 않은 절대적 영역을 토대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 이론이다. 이에 따라 융은 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일도 그것이 동시에 일어났다면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개인은 자신이 자라온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특정 상징을 떠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방면에서 인류와 함께한 아포페니아


아포페니아는 다방면에서 인류와 함께 발전해 왔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미묘한 단서를 해석해 잠재적인 포식자를 빠르게 인식하는데 도움을 줬으며,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영감을 줬다. 대표적으로 근대 희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19세기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는 아포페니아를 심하게 앓았다. 그의 경험은《오컬트 일기(Occult Diary)》라는 자전적인 글에 생생하게 담겨있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현미경으로 호두를 들여다보다가 기도하는 손을 발견하기도 했고, 구겨진 베개를 ‘미켈란젤로가 빚어놓은 대리석 두상’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일상 속에서 계속해서 발견되는 의문의 형상들에 악마가 직접 나타날 것이라며 공포에 떨던 그는 환각, 편집증, 피해망상 등 각종 정신 질환에 시달리다 1912년 63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그의 극심한 아포페니아는 정신 질환으로 이어졌으나, 그가 ‘괴짜 천재 극작가’로서 120개가 넘는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자신의 저서에 벽에 생긴 얼룩이나 구름의 모양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그리게 됐음을 밝히며 아포페니아가 그의 예술적 장치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저술했다. 이처럼 아포페니아는 창의성, 예술성, 창조의 근간이 되기도 하나 과하게 사용될 시 과대해석과 비합리적인 편견 혹은 망상으로 이어질 위험 또한 가지고 있다. 취리히 대학의 신경과 의사 피터 브루거는 아포페니아를 “정신병과 창조성을 연결하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모든 방면에서 AI가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은 현재, AI가 단 한 가지 학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무작위 속에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아포페니아는 인간만이 가진 독창적인 능력이자 본능이며, 인류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새로움과 독창성의 원동력으로 기능해 왔다. 각자의 삶에서 아포페니아가 선물할 모든 경험과 가치는 이제 본인의 의지에 달렸다.


이나윤 기자 sugar03@


*인지편향: 인간이 정보 처리하는 도중 발생하는 오류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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