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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술을 팔면, 밀주라고 부른다. 그걸 은쟁반에 담아서 내놓으면, 접대라고 부른다.’ 금주법 시대 술 밀수 사업을 통해 크게 성장해 미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는 술을 금지하는 ‘금주법’ 이면의 모순을 지적하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 연방정부는 헌법을 통해 음용을 위해 제작되는 알코올 음료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미국의 수정 헌법 제18조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음료용 주류의 제조, 판매, 또는 운송, 수입, 수출은 미국과 모든 사법권이 미치는 영토에서 금지될 것.’ 이 헌법 조항은 일명 ‘금주법’으로 불리며, 1920년 1월 비준돼 약 14년간 이어지다가 1933년 폐지됐다.


19세기 초 음주로 인한 폭력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특히 유럽과 미국을 불문하고 금욕적인 청교도 교리의 영향이 강한 곳에서는 음주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남북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 전쟁의 피해로 인해 사회적인 좌절감이나 불안과 같은 심리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개인의 음주량도 함께 증가했다. 특히 주된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된 것은 바로 남편이 음주 후 아내와 아이들을 향해 휘두르는 가정폭력이었다. 이에 따라 농촌의 개신교 세력(금주 십자군 등)과 기독교 계열 여성단체(여성기독교금주연맹 등)가 뭉쳐 금주법 제정을 주도했다. 1919년 여성의 참정권 보장이 진행된 이후 금주법은 빠른 속도로 정치권에서 비준됐다.


국가에 의해 전면적으로 ‘술을 금지했다’는 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국가가 금지한다고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실제로 금주법의 시행은 통상적으로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당시 미국은 볼스테드 법안을 통해 금주법에 대해 추가적으로 술을 ‘0.5% 이상의 알코올을 함유한 모든 음료수’로 정의하고 ‘이 법에 의해 허용된 경우를 제외한 술의 제조·판매·교환·운송·수입·수출을 금지한다’고 명시한 상태였다.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술의 범위는 몹시 좁아져, 주류 소비는 큰 폭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주류 산업은 점점 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영역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미국 시민들은 각종 편법을 통해 술을 마시고자 시도했다. 먼저 가정에서 제조하는 밀주가 성행했다. 이를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그레이프 브릭’이다. 그레이프 브릭은 포도를 재처리해서 벽돌처럼 딱딱하게 굳힌 식료품으로, 여기에 물을 부으면 포도주스가 되며 이를 발효시키면 포도주가 되었다. 그레이프 브릭은 판매될 때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붙었다. ‘물에 녹인 후 20일간 발효시키지 마시오. 포도주가 될 수 있음.’ 사실상 가정에서 술을 주조하는 방법을 우회적으로 알려주는 경고문이었던 셈이다. 이와 함께 위장 간판을 달고 운영하는 불법 술집들이 곳곳에 나타났다. 의료용 알코올은 허용 대상이었기에 의사들은 알코올 처방 가능 범위를 늘려달라고 법원을 향해 청원하기도 했다. 법의 보호 밖에 놓인 주류 산업은 마피아 조직들의 손에 쥐어졌다. 시카고 일파의 ‘알 카포네’와 같은 유명한 마피아 조직들이 주류 밀매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재산을 불렸다. 양조장이나 포도밭, 밀수 루트를 둘러싼 마피아 간의 항쟁으로 인한 충돌과 유혈 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금주법에 반대하는 미국 시민의 수가 늘어날수록 철폐를 향한 목소리는 커졌다. 결국 1933년 금주법 폐지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롱령이 당선되며, 금주법은 시대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 해 ‘수정헌법 제18조를 이 시점에서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미국 수정헌법 제21조가 비준됐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이전의 헌법을 뒤집고 비준된 유일한 헌법 수정안으로 미국 역사에 기록됐다.


김현주 기자 hj210031@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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