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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이과생들의 ‘교차지원 대란’이 현실화됐다. 지난 2월 서울시교육청 중등진학연구지도연구회가 2022학년도 서울 22개 주요 대학 정시모집에서의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 중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을 분석한 결과, 이 중 8개 대학에서의 교차지원 비율이 절반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별로는 서울시립대가 88.0%로 가장 높았고, 서강대(80.3%), 한양대(74.5%)가 뒤이었다. 사실상 본교의 경우 인문계열 지원자 10명 중 8명은 이과생인 것이다.


교차지원이란 문과생과 이과생이 서로의 학과에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대입에서 이과생이 대거 교차 지원한 이유는 이과생이 인문계열에 지원하는 것이 이공계열에 지원하는 것보다 합격에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이과가 통합된 2022학년도 입시부터 수험생들은 자신이 응시할 수학 과목을 선택하게 됐다. 즉, 문·이과 통합임에도 선택과목에 따라 문·이과생이 나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입점수 산출 기준인 ‘표준점수’는 이과생들이 선택하는 과목이 상대적으로 높아, 이과생들이 상대적 우위를 지닌 문과대학에 대거 교차지원하게 됐다.


| ‘융합형 인재’보다 되레

| ‘이탈 고려’ 교차지원생 양산


통합형 수능의 본래 목적은 문과와 이과의 장벽을 없애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었다.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문·이과 통합형 수능에 대해 “계열의 구분을 지양함으로써 창의적인 미래형 인재를 기르기 위함”이라 그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이과생이 문과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는 대입에서 유리하기 때문인 경우가 다수다. 실제 본보에서 서울 주요 10개 대학에 교차지원으로 입학한 22학번 6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78.1%가 교차지원을 한 이유에 대해 ‘전략적으로 대학 급간을 높이기 위함’이라 답했다. 본교에 교차지원으로 입학한 이 모(인문 22)학우는 “우선은 대학 급간을 높이려 인문계열에 지원했고,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문제는 진학 이후에 발생한다. 교차지원을 이용해 전략적으로 대학에 지원했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진로와 학과의 불일치 문제를 겪고 있다. 올해 4월 입시업체 유웨이가 대입에서 인문계열로 교차지원한 자연계열 수험생 4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연계에서 인문계로 교차지원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42.1%가 ‘후회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본보에서 실시한 설문에서 향후 학업 계획에 묻는 질문엔 54.7%의 학생들이 본 전공 이탈(이공 계열 복수전공·반수·전과)을 고려하고 있었다.


| ‘말뿐인 통합’으로 인한

| 사회적 손실과 수험생 혼란


교차지원생들의 이탈 문제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상명대 교육학과 장덕호 교수는 “학생 개인의 입장과 더불어 대학 입장에서도 선발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교차지원생의 이탈 문제는) 대단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지적했다. 교차지원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인문계열의 경우, 학계 차원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강대 사학과 정일영 교수는 “이과적 소양을 가지고 인문계열에서 좋은 성과를 충분히 올릴 수 있다고 보지만, 현재 입시 구도에서는 학문적 융합을 목표로 교차지원하는 학생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합격 후 이탈 할 가능성이 높기에 인문계열에 좋은 영향을 끼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교차지원으로 인한 문제의 기저에는 불완전한 교육 제도가 있다. 문·이과 통합이지만 사실상 대학에서는 문·이과를 분리해 선발되는 제도에서부터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교육과정 상에는 문·이과 통합이라고 하는데, 대학에서는 사실상 문·이과를 구분해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가 문제”라며 “여전히 문·이과가 구분된 상황에서 교차지원을 걱정하고, 불공정을 경험하는 학생들만 난처한 상황”이라 꼬집었다. 덕이고등학교에서 진로진학부장을 맡고 있는 유수창 교사는 “(현행 문·이과 통합 제도는) 단지 성적 산출에서만 문·이과 구별을 없앤 것”이라며 “이러한 과정에서 ‘융합’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비일관적 교육 제도의 등장 배경에는 부처 간 소통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 교수는 “교육 과정 개편을 할 때마다 교과 이기주의가 등장한다”며 “그런 교과 이기주의를 정부가 제어해야 하는데, 수학과 과학탐구 교과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편성하고, 정작 대입제도는 교육부에서 운영하다 보니 부처 간의 협업이 안 돼 제어가 어려운 상황”이라 지적했다.


| 진정한 문·이과 구분 폐지란··· 

| 전 교육과정 차원의 변화 필요


결국 문제는 ‘문·이과 통합 교육의 취지를 어떻게 시행하느냐’다. 전문가들은 문·이과 구분 폐지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교육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숙명여대 교육학과 송기창 교수는 “학과별 구분은 당연하지만, 문·이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대학에서는 지원학과의 특성에 맞는 과목을 고등학교에서 이수하도록 지원조건을 제시하고, 대학 진학 후에도 진로지도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오마중 김근실 교사는 “사실상 중·고등 교육과정 속 문·이과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진정으로 학생들의 자유로운 진로 탐구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제도 변화로 혼란을 주기보다 중등학교 때부터 진정한 융합형 교육을 실천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즉, 중·고등학교 차원의 실질적 융합 교육 실천과 대학 차원에서의 융합형 인재 선발을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처 간 협업 문제를 지적했던 장 교수는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선 부처 간의 논의가 원점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곧 개최될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논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문·이과 통합이라는 제도와 문·이과가 구분된 교육의 괴리,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의 중심에 학생들이 있는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의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주하 기자 jhpark@sogang.ac.kr

이나윤 기자 sugar03@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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