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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보수성향 단체가 집회를 벌이고 있다.


│고성과 욕설 오가는 집회 현장

│집회 소음에 시민들 고통 호소해


“저 더러운 좌파 빨갱이 놈의 XX들을 능지처참에 처해야 한다!” 지난 3일 세종대로 일대에 인신공격성 욕설이 섞인 고성이 울려 퍼졌다. 집회 참가자가 마이크에 대고 자극적인 단어와 함께 고성을 내지를수록 좌중의 함성도 커졌다. 이날 열린 집회에선 집회 참가자들이 약 5분마다 번갈아 가며 마이크를 잡고 특정 정치인을 조롱하는 욕설을 퍼부었다.


같은 날 동시간대에 해당 집회에서 500m가량 떨어진 지하철역 바로 앞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폭력적인 문구가 적힌 포스터들이 역 앞 인도에 붙어있었고, 곳곳에 놓인 확성기에선 “부정선거에 굴복하는 자들은 개만도 못한 XX들입니다. 개XX들은 척결해야 합니다”라는 녹음된 음성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 옆에선 집회 참가자들이 북과 꽹과리를 치며 녹음된 음성보다 더한 수위의 욕설을 내뱉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온 시민들은 집회 소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고 지나갔다. 아이와 함께 길을 지나가던 A 씨는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시끄러워서 놀랐다”며 “집회도 집회지만 아이도 있는데 내용이 듣기 너무 거북하다”고 토로했다. 인근 자영업자 B 씨도 “너무 시끄러워서 경찰에 신고도 해봤는데, 합법적인 집회라 제재하기 어렵다며 어쩔 수 없다고만 하더라”고 전했다.


지난달 27일 구로구 오류동에서는 종교 단체 사이에서 일어난 내부 분란으로 인해 집회가 열렸다. 집회 주최 측 관계자는 교회 내 세력 싸움에서 밀려 쫓겨난 신도들이 다시 교회에 들어가기 위해 집회를 주최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집회는 약 두 달 전부터 매주 3일씩 열리고 있다. 인근 카페에서 일을 하는 C 씨는 “매주 소음이 반복되니 정말 스트레스받는다”며 “한번은 집회 주최자들이 카페에서 시끄럽게 싸운 적도 있다. 본인들만의 문제를 가지고 왜 시끄럽게 집회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집회 현장엔 경찰 3명이 출동해 있었지만 발생하는 소음에도 별다른 제재를 하진 않았다.


▲ 같은 날 시청역 앞 인도에 놓인 확성기에서 녹음된 음성이 반복 재생되고 있다.


│허점 많은 집시법

│꼼수로 무용지물 된 소음 규정


무분별한 집회 소음으로 많은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도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으로는 소음 규제가 어려운 실정이다. 집시법은 소음의 평균값인 ‘등가소음도’와 측정 시간 내 발생한 가장 큰 소음인 ‘최고소음도’를 측정해 집회 소음을 규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등가소음도는 10분 동안 소음을 측정한 후 그 평균이 65dB을 초과했을 때 규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은 이를 악용해 5분 동안은 확성기나 꽹과리 등으로 큰 소음을 낸 후, 나머지 5분 동안 멈추기를 반복하는 식으로 평균값을 낮춰 해당 규정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고소음도를 측정하는 규정이 도입됐지만 그 빈틈은 여전하다. 최고소음도는 발생하는 소음이 1시간 동안 85dB을 세 차례 초과했을 때 규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집회 참가자들은 두 차례 소음 기준을 초과한 후 중단하기를 반복하는 식으로 규제를 피하고 있다. 또한 인접한 장소에서 2개 이상의 집회가 동시에 발생했을 땐 ‘중복 소음’으로 인정돼 소음을 측정하지 않는다. 맞불집회와 같이 2개 이상의 집회가 동시에 발생하면 더 시끄러워짐에도 불구하고 소음 발생지를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집시법의 허점으로 시민들이 체감하는 소음과 실제로 측정되는 소음 간에는 상당한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소음 규제 강화하는 집시법 개정 추진

│집회의 자유 억압 논란 일어


집회 소음 규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난달 21일 경찰청은 ‘집회·시위 문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현행 집시법에서 10분이었던 등가소음도 측정 간격을 5분으로 줄이고, 최고소음도 규제 횟수 역시 1시간 내 3회에서 2회로 줄인다. 또한 심야 시간대에 시민의 평온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는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를 두고 헌법재판소(헌재)의 판결을 역행하는 것이며,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현행 집시법 제10조에선 해가 진 후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 옥외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은 헌재가 2009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고, 2014년에는 해가 진 후부터 자정까지의 집회를 처벌하는 것을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사실상 효력을 잃은 상태였다. 이에 이번 개정안에서 자정부터 6시까지 집회 금지를 추진하는 것은 앞선 헌재 판결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은 위헌이 아니며 오히려 당시 헌재 판결의 취지를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헌재의 판결은 해진 후부터 해 뜰 때까지 집회를 금지하는 것이 학생과 직장인의 집회 참여를 금지하는 것과 같다고 봤기 때문에, 이들의 집회 참여가 가능하도록 제한 시간을 조정하라는 것이었다”며 “따라서 그 시간을 자정부터 6시까지로 제한한다는 이번 개정안은 헌재의 취지에 따른 합리적인 결정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정안이 집회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에 대해서 그는 “집회의 자유의 본질은 ‘집단적 의사 표현의 자유’이다. 그런데 자정부터 6시까지 집회를 연다면 누구를 향해 의사 표현을 하겠다는 것이냐”며 “이 경우엔 인근 주민의 기본권이 우선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련의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찰청이 발표한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돼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며 집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건강한 집회 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 교수는 “기본권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기본권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며 “다른 시민들의 기본권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합리적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음을 염두해야 하고, 이는 집회의 자유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글·사진 | 박주희 기자 juhui1120@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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