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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숨진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서이초등학교로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체육관 외벽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포스트잇 메세지들이 붙어 있고, 교문 앞에는 근조 화환들이 늘어서 있다. 


▲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맞아 국회의사당 앞에서 ‘공교육 멈춤의 날’ 시위가 진행됐다. 추모를 위해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어 추모와 교권 보호를 외쳤다.



| 9월 4일, 국회 앞으로 모여든 교사들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목소리 모아


지난 4일 오후,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길은 지하철역에서부터 검은 옷을 입은 인파로 가득했다.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맞아 추모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국회의사당 앞 도로를 꽉 채운 검은 옷의 인파는 줄과 열을 맞춰 앉아 모두 똑같은 슬로건을 치켜들고 있었다. 슬로건에는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권보호합의안 의결하라’ 등이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 A(37세) 씨는 “서이초 교사의 사례를 보고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추모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이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으로 재직하던 교사가 숨진 이후로, 교권 신장과 교사 노동환경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현직 교사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29일 기자가 직접 강원도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방과 후 교실에서 만난 교사 B(29세) 씨는 “서이초 사건을 보자마자 현직 교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다 겪어 봤을 일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이초 교사에게 악성 민원을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학부모를 스토킹이나 협박 혐의로 고발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고 나서야, ‘지금껏 내가 겪었던 일들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구나’라고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동학년의 교사 C(32세) 씨 역시 이에 동감하며 초임 시절에 겪은 일을 회상했다. 그는 “폭력을 휘두르려는 아동을 막았다가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당해 교육청 조사를 받았는데, 교무실에서는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교직 생활에 널린 일이다’와 같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C씨는 “그러나 이게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 ‘이럴 바엔 생활지도 안 하겠다’

무력감 시달리는 교사들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짚으며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공교육의 붕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초등교사 D(25세) 씨 는 “아무리 좋은 학부모여도 문제가 생기면 얼마든지 악성 민원인으로 돌아설 수 있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묘사했다. C씨는 “이제는 교실에서 아이를 봐도 그 뒤에 있는 학부모가 먼저 떠오른다”고 덧붙였다. D씨 역시 “아이를 한 번 혼내고 나면 하루 종일 불안하다”며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행 아동복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아동학대 행위는 △ 아동 매매 행위 △ 성적 학대행위 △ 신체적 학대행위 △ 정서적 학대행위 △ 아동 방임행위 등을 포함해 총 11종이다. 이 중 교육 현장에서 가장 교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정서적 학대 행위’ 조항이다. 초등학교 교사 E(37세) 씨는 “교육 현장에서 ‘정서적 학대 행위’로 신고하면 걸리지 않는 교사가 없다”고 설명했다. 잘못된 행동을 한 아동을 혼자 불러다 혼을 내도 아동학대고, 공개된 장소에서 혼을 내도 아동학대고, 심지어 혼을 내지 않고 넘어가도 아동학대라는 것이다. E씨는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장난을 치는 아이더러 ‘XXX(이름) 그러지 마,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것도 신고하면 정서적 아동학대 행위로 잡혀갈 수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B씨는 “이렇게 되면 교사 입장에서는 생활지도를 완전히 포기하는 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 된다.”며 “점차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단편적으로 가르치고 그 이상의 시도를 아예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 ‘아동학대 면책권’ 필요

학대하겠다는 말 아냐, 상식선에서 지도


이에 따라 지난 5월 이태규 국회의원 외 9인은 국회에 무분별한 아동학대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서도 아동학대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교육활동 자체를 위축시켜 전체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법안에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서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복지법」 제17조 3호부터 6호까지에 의한 금지행위 위반으로 보지 아니한다’는 항목이 신설됐다. 해당 금지행위 3호부터 6호에는 △ 신체적 학대행위 △ 정서적 학대행위 △ 아동 방임행위가 포함된다. 


현행 아동학대범죄처벌법에 따르면 학교에 교사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교사는 수업 배제나 직위 해제 등을 통해 해당 아동과 즉시 분리된다. 수사를 거쳐 유죄로 판명될 경우 최대 형량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설문조사에 의하면 아동학대 신고를 겪은 교사 중, 유죄가 확정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반면 허위사실로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졌다 해도, 허위 신고자를 처벌하기는 매우 어렵다. 현행법상 신고자가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사전에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면 무고죄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B씨는 “학부모가 던지는 ‘아님 말고’식의 신고 하나에 교사는 몇 배로 피해를 돌려받는다”며 “아동학대 신고 시 무고죄에 대해서도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C씨는 “요즘 아이들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 앞에서는 꼼짝 못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며 “이것이 교사의 권위 추락과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거 아동학대로 걸면 신고할 수 있어서 선생님은 이렇게 못 할걸?’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당한 지도를 하려다가도 불편해진다”며 과거 경험을 돌이켰다. B씨 역시 “아이들을 학대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상식적인 선에서 교육이 이루어졌을 때 학부모의 어처구니없는 민원으로 처벌받지 않도록 보호해달라는 것”이라 호소했다.

 

| 멀리 보는 교육을 위해 나아가야 할 길

‘살아서 일하고 싶다’는 교사들의 소망


교사들은 사명감을 품고 일을 시작했으나 정작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망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 무력함이 우리가 거리로 나온 이유’라고 말한다. B씨는 “사학연금이나 성과급 등과 같이 교사만의 문제였다면 얼마든지 싸우지 않고 조용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공교육 전체의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지 않나. 교육다운 교육을 하고 싶고,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는 세상이 되길 바라 거리로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갓 교육계에 몸담은 젊은 초임 교사가 은퇴하기까지는 아직 30년이나 남았다. 남은 기간 ‘살아서 일하고 싶다’, ‘진정한 스승이 되어 제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교사들의 소망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러한 소망에 이제는 사회가 제대로 응답해야 할 때다.


글·사진 | 김현주 기자 hj210031@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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