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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치매안심센터 ‘반갑다방’


“어서 오세요, 여기는 카페 반갑다방입니다.”

지난달 서울 은평구 치매안심센터에 특별한 카페가 오픈했다. 치매 환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 ‘반갑다방’이다. 전국 치매안심센터 설립은 정부가 2017년부터 ‘치매 국가책임제’의 일환으로 시행해 온 사업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대한민국의 치매 환자 수는 매년 증가해 2022년 기준 60세 이상 치매 환자는 95만 명에 달한다.


정부는 치매를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2017년 ‘치매 국가책임제’를 실시하며 전주기적 치매 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전국 256개 지자체에 설립된 치매안심센터는 해당 자치구 주민들에게 무료 치매 검사, 의료비 지원, 예방 프로그램 등의 치매통합관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중 은평구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들이 직접 카페를 운영해 보는 특별한 치매 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난 21일, 기자가 카페 ‘반갑다방’에 방문해 치매 어르신과의 만남을 가졌다.


▲ 서울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베테랑 바리스타로 거듭나기까지 

│“이제는 메뉴판도 외워요”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2층에 위치한 카페 ‘반갑다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르신 한 분이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맞아주신다. 비교적 증상이 가벼운 경도 치매를 앓고 있는 카페 자원봉사자 김운자(74) 씨다. 둥굴레차를 주문하자 김 씨는 주문을 잊지 않기 위해 자원봉사자용 메뉴판에 표시한 후, 여느 카페 직원처럼 능숙하게 음료를 만들기 시작한다. 음료를 기다리며 둘러보니 카운터에 눈길을 끄는 안내문이 놓여 있었다. ‘조금 느린 카페 반갑다방. 주문이 틀려도, 음료가 조금 늦게 나와도 이해해 주세요.’ 반갑다방에는 이곳만의 독특한 규칙이 있다. 먼저 카페의 모든 음료는 무료로 제공된다. 대신 주문한 음료는 직접 카운터에서 가져가야 하며, 음료가 잘못 나오거나 늦어도 이해해야 한다. 재료와 식기가 놓여있는 수납장에 ‘보리차’, ‘접시’, ‘스푼’ 등의 이름표들이 크게 붙어있는 것도 반갑다방만의 특징이다. 모두 치매 어르신들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다. 김 씨는 “처음에는 메뉴판과 이름표가 있어도 실수하기 일쑤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메뉴, 식기 개수 등을 적은 메모장을 휴대폰 케이스에 붙이고 다니며 공부했다. “이제는 어디에 무엇이 몇 개 있는지 다 기억해요. 메뉴판도 외워요.” 그는 카페 일을 하며 처음 치매를 진단받았을 때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고 있다고 전했다.



▲ ‘주문이 틀려도, 음료가 조금 늦게 나와도 이해해 주세요.’


“제가 노력하면 치매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서 카페 일을 시작했어요.” 그는 치매 극복을 위해 종이접기, 등산, 영어를 배우고, 카페에 손님이 없을 때는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외우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치매 환자들에게는 일뿐 아니라 사소한 활동을 해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계속해서 배우고 카페 일도 하면서 내가 짐이 되지만은 않겠다는 희망이 생겨요. 스스로 많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자신감이 생겨서 이제는 새로운 것에 도전도 해요.”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이 힘들 텐데도 해낼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내가 사람답게 살아야지 여러 사람이 피곤하지 않잖아요. 정신없이 헤매는 엄마가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엄마로 남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치매 환자 가족 부담 여전해

│환자가 간병비 전부 부담해야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의 가족을 위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치매 환자 가족 대상 치매 교육 프로그램, 가족 상담 및 돌봄 부담 분석 프로그램, 가족 간 정보 공유를 위한 자조모임 등을 제공한다. 하지만 치매 환자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전히 크다. 국가 정책 사업에는 포함되지 않는 간병비 지원 때문이다. 의료법에는 간병인에 대한 규정이 없어 요양병원 간병비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환자 개인이 간병비 전부를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의 ‘요양병원 유형별 특성 분석과 간병비 급여화를 위한 정책 제언’ 연구에 따르면 요양병원 입원 환자가 간병비로 지출한 비용은 응답자의 55%가 월 25만~75만 원, 30%는 75만 원 이상이었다. 같은 해 대한요양병원협회가 요양병원 환자와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요양병원 이용 시 간병비 부담이 큰 편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6.9%가 ‘매우 그렇다’, 23.4%가 ‘그렇다’고 답해 치매 환자 가족이 느끼는 간병비 부담이 매우 큰 것으로 드러났다.


4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박 모(51) 씨는 직장생활과 돌봄을 병행할 수 없어 현재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을 고용해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박 씨는 한 달에 약 100만 원의 병원비와 60만 원이 넘는 간병비를 지출하고 있다. 그는 “간병비를 생각하면 제가 직접 케어하고 싶지만 직장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방문 서비스는 간병 시간이 너무 적어 이용할 수도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방문 요양 서비스는 요양보호사가 직접 방문해 생활을 돕는 서비스로, 장기 요양 보험 제도를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 최대 4시간 동안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어 제도의 효율성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간병비 급여화는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다. 치매 국가책임제에서도 간병 문제는 주요 해결 과제였으며, 윤석열 정부 역시 선거 당시 간병비 급여화를 대표 보건의료 공약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별다른 성과 없이 수년째 논의만 계속되는 상황 속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글·사진 | 박주희 기자 juhui1120@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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