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이 모(21) 씨는 매일 새벽 6시 반에 기상한다. 첫 수업은 오전 10시지만, 그는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그가 사는 인천 청라에서 홍익대학교까지는 1시간 20분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동시간은 길지 않은데, 배차 간격이 정말 길어요. 집 앞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를 한번 놓치면 20분에서 30분 정도 기다려야 하고, 역에서 학교까지 가는 공항철도 배차 간격이 기본 15분 정도 돼요.” 혹여나 버스라도 놓치는 날엔 버스 요금의 약 6배나 되는 7,000원 가량을 지불하고 택시를 타기 일쑤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대중교통으로는 대략 45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실제 통학에 걸리는 시간은 그 3배에 달한다. 

기자는 이 씨의 등굣길을 동행해봤다. 등교와 출근 시간이 맞물려 인산인해를 이룬 열차 내 30분 동안 서서 가는 것은 물론이며,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공항철도의 특성상 커다란 캐리어에 치이며 이동하는 것 또한 예삿일이다. 등교 가방을 멘 채 지하철에서 시달리니 기자는 첫 수업을 듣기도 전 진이 모두 빠졌다. 그는 “전공 책과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매일 왕복 3시간을 이동하는 건 늘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전면 대면 수업 전환 이후 처음 제대로 경험해본 등굣길 난에 “졸업할 때까지 통학하는 건 무리인 것 같다”며 “다음 학기에는 기숙사에 지원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 카카오맵으로 '월요일 7시'를 설정해 통학에 소요되는 시간과 환승횟수, 배차간격을 조사해 비교해봤다. 


| 사립대학 기숙사 30%

| 서울, 경기 인천 거리점수 ‘같아’


이 씨처럼 경기, 인천 지역 통학생들은 극심한 통학 불편을 겪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 서울권 주요 사립 대학 18개를 대상으로 기숙사 사생 선발 방식을 조사한 결과. 


많은 서울권 대학 기숙사는 경인지역 거주학생들과 서울 거주학생들을 동일하게 취급한다. 본보에서 서울권 주요 사립대학 18개의 기숙사를 대상으로 기숙사생 선발 방식을 조사한 결과, △거리에 따른 점수 차등 없음 △서울·경기·인천 거주학생 동일하게 취급 △서울-경인지역 구분 △경인지역 내에서도 시/군별 구분해 가산점 부여 등의 기준으로 사생을 선발하고 있었다. 


이중 서울·경기·인천 거주학생을 동일하게 취급해 선발하는 경우가 6곳으로 가장 많았다. 동국대학교 남산학사(중구)의 경우 서울과 경인지역에 거주하는 학생을 같은 2순위로 분류한다. 본교 벨라르미노학사(마포구)도 통학거리를 고려해 사생을 선발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 간 거리 점수 차는 미미하다. 이외에도 숙명여대 학생생활관(용산구), 숭실대 레지던스홀(동작구), 연세대 생활관(서대문구) 등이 경인지역 거주학생을 서울 거주학생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경인지역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연세대는 서울, 경기, 인천을 ‘수도권’으로 포함하고, 수도권 거주학생은 기숙사 선발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에 따라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연세대 재학생 A씨는 매일 인천 송도에서 캠퍼스가 있는 신촌까지 통학하고 있다. 그는 “이용하는 광역버스 배차간격이 60분에서 90분”이라며 “막히면 3시간 넘게도 걸려서 통학이 매우 힘들다”고 전했다. 


학교 주소지와 주민등록상의 주소지 간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가산점을 부여하는 학교도 있다. 고려대 에듀21 학생기숙사(성북구)와 한국외대 기숙사(동대문구)가 대표적이다. 이는 지역과 상관없이 오직 거리로만 차등을 두고자 하는 의도지만, 실질적인 통학 시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직선거리 기준에 따르면 고려대에서 16.2㎞ 거리에 있는 서울시 구로구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은 동일한 가산점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통학시간을 계산해 보면, 남양주시 진건읍까지는 1시간 54분, 서울시 구로구까지는 59분이라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통학시간에 비례하도록 '인천광역시', '성남시', '포천시' 위치를 재구성해봤다. 


본보는 통학시간에 비례하도록 수도권 지도를 재구성해봤다. 각 지자체 청사로부터 본교까지의 통학시간을 반영해 지도를 재구성하자, 지도에 큰 변동이 나타났다. 성남시는 서울에서 더 멀어졌고, 교통편이 좋지 않은 포천시는 훨씬 더 멀어졌다. 직선거리에 따른 점수 차등 부여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다. 


한편 통학 어려움을 고려해 일부 경인지역에 가산점을 주는 기숙사도 있다. 건국대 쿨하우스(광진구) 관계자는 “수도권 학생 사이에서 지하철 권역인지 여부에 따라 차등적으로 가산점을 준다”고 전했다. 한양대 기숙사도 비슷한 방식으로 특정 지역에 가산점을 부여한다.


그러나 여전히 부분 가산점 대상 지역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요구와 어려움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상태다. 본교 곤자가 국제학사(마포구)는 경인지역 학생 중에서도 양평, 연천, 이천, 여주, 포천, 가평 및 도서 지역 학생들에게는 0.5점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이외 경인지역과 서울권 학생들에게는 지역 점수 1점을 동일하게 부여한다. 따라서 학교까지 30여 분 거리인 서울시 서대문구에 사는 학생이나, 1시간 30여 분 거리의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사는 학생 모두 1점을 받는다. 본교 곤자가 국제학사 행정실 관계자는 “기숙사위원회 측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 학생에게 기숙사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금의 선발 방식이 자리잡은 것 같다”며 “학생들이 경인지역에 가산점을 부여하기를 원한다면 기숙사위원회에서 검토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 재경기숙사도 부족해

| 힘겹게 통학하는 학생들


학내 기숙사에서 밀려난 경인지역 거주학생들은 재경기숙사에 입사하기도 어렵다. 재경기숙사란 지자체별로 지역 출신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는 기숙사를 말한다. 서울에 위치한 경인지역 운영 재경기숙사는 8개로, 선발 인원을 전부 합해도 1,312명에 불과하다. 


통학이 어려운 모든 경인지역에서 재경기숙사가 운영되지는 않는 것도 문제다. 경기도에서는 평택, 포천, 화성, 가평 총 4곳이 지자체 공공기숙사를 운영 중이며, 인천광역시 강화도에서도  공공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통학시간이 왕복 5시간에 달하는 이천시, 안성시, 연천군 등 출신 학생들을 위한 재경기숙사는 없다. 


| 경인지역 통학생 76%, 기숙사 거주 희망

| 사생 선발 방식에는 불만 토로


본보 설문에 참여한 경기도, 인천 거주 통학생들은 기숙사에 거주하고 싶은 의사를 밝혔으며, 통학 불편을 호소했다. 본보가 경기도, 인천에 거주하는 통학생 2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통학에 불편을 느낀다고 답한 응답자는 약 91%(184명)에 달했다. 학생들은 ‘긴 통학시간으로 인한 피로감’, ‘시간 낭비’, ‘긴 배차간격’을 불편함의 이유로 들었다. 왕복 통학시간에 2시간 이상을 쏟는다는 응답은 34%(69명)를 웃돌았다. 4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는 응답자도 약 8%(16명)였다.


학내기숙사 또는 재경기숙사 거주를 원하는 학생은 74%(151명)에 달했으나, 선발 과정에서 떨어진 학생은 전체 응답자 중 약 20%(36명)에 육박했다. 전체의 약 94%(190명)는 경기, 인천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내기숙사 또는 재경기숙사 수용률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이들은 기숙사 선발기준의 부당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일부 응답자는 ‘수도권이지만 거리가 멀거나 환승이 불편한 경우에는 거리 점수를 조금이나마 주었으면 좋겠다’, ‘단순 거리 기준이 아닌 실제 교통상황을 고려한 통학시간을 기준으로 선발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다.


인천광역시의회 김대영 의원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보다 수도권 학생들은 편의가 비교적 나으니 자격이 박탈된다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사생을 선발할 때 통학시간을 고려해 지역에 따라 점수를 차등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김민정 집행위원장은 “지금은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기숙사 선발 방식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의견을 좀 더 반영해 논의 후 선발 방식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기숙사 수용률이 낮다는 문제 또한 지적했다. “지역 학사도 서울 외곽에 있고, 월세도 계속 오르고 있다”며 “대학 차원에서 기숙사 설치가 어려우면 지역구 내에 여러 학교를 묶어 기숙사를 설치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있다”고 밝혔다. 


중앙정부가 재경기숙사 확충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집행위원장은 “지자체별로 재정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숙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도 중앙정부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재정적 여건이 좋은 지역이 아니고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지역 학사를 확충하기는 어렵다”며 “교육부 차원의 지원과 지자체 예산 편성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통학을 함께한 이은빈 씨는 꽉 찬 지하철 안에서 기자에게 “그래도 나름 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매일 해뜨기 전 일어나, 하루의 6분의 1을 이동시간에 쏟는 삶은 그에게 이미 익숙하다. 대학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불편함은 어느새 익숙함이 돼가고 있다. 오늘도 만원 버스에 몸을 싣는 이들을 위해 대학과 지역사회의 움직임이 필요한 때다.


차의진 기자 iamchayj@sogang.ac.kr

김유정 기자 yujeonnee@sogang.ac.kr

박주하 기자 jhpark@sogang.ac.kr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