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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홀로 일본의 삿포로를 향해 떠났다. 혼자서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름의 부푼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허나 아는 일본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맥주 주세요”라는 말밖에 없었던 탓인지 유독 쓸쓸하고 고독한 감정이 내 주위를 맴돌기만 하였다. 마지막 날 밤, 시내의 이자카야를 갔었고, 혼자 갔음에도 운이 없게 가게의 한가운데 테이블을 앉아서 홀로 맥주에 가라아게를 먹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면에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회식을 하는 직장인들. 좌측에는 몇 년 만에 만난 듯한 친구인지 즐거워하며 이야기하는 사람들. “너에게 관심이 있어”라는 듯한 표정으로 소개팅하는 남녀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근심 하나 없는 표정으로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걱정 하나 없는 표정으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경계심 하나 없는 표정으로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었다.


그런 그들 가운데에서 나도 저런 순간들이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았다. 사람들과 같이 연주회를 준비했던 일들, 가족들과 도란도란 밥을 먹었던 일들, 친한 동기들과 학교 앞에서 술을 마셨던 일들, 좋아했던 사람과 데이트했던 일들. 그제야 그때 내가 지었던 표정들이 웃고 있는 표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때 순간들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론 화려하고, 때론 수수하고, 때론 아름답던 것들은 지고 나서야 그 가치가 다시 선명해지고 빛이 발해진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처럼 지치거나 힘들 땐, 두 걸음 아니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 주위를 둘러보길 권한다. 주위의 화단에는 꽃들이 만개하고, 가을 준비를 하는 푸른 나무들과,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 사람들과, 그리고 웃고 있는 자신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자가 했던 말을 인용해 글을 끝맺고자 한다.


“모든 것은 저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나 모든 이가 그것을 볼 수는 없으니라”


오승준 (수학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