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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글로벌한국학과 겸임교수 정 용 시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길 잃은 여행자들은 밤하늘의 북극성을 나침반 삼아 발을 내디뎠다. 여기, ‘교육’을 북극성 삼아 인생이란 길을 여행해온 이가 있다. 본교에서 ‘Global Citizenship’을 가르치는 정용시 교수를 만나 그의 교육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글·사진 | 조은솔 기자 eunsol0407@sogang.ac.kr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배운 ‘공감’의 가치


어린 시절의 정 교수는 동네 아이들과 공을 차며 노는 게 하루의 낙이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예쁜 애, 못생긴 애, 공부 잘하는 애, 못하는 애 차별 없이 함께 동네를 뛰놀았던 유년의 기억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과 섞여 자란 어린시절이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나와 다른 가정환경을 지닌 친구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 어린 시절.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얻은 ‘공감의 중요성’은 현재 그가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고 남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의 큰 기반이 돼주었다. “오히려 균일한 집단에서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렸다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거예요.”


그를 성장시킨 건 건 동네 친구들뿐만이 아니다. 과거를 돌아봤을 때 정 교수에게 영향을 준 대부분의 사람은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교사였으며, 여동생은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그의 학교 선생님들 또한 그의 ‘영어 교육’이란 전공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막상 영어 교육을 공부하니 그는 자신의 한계를 영어 교육에 결정짓고 싶지 않았다. “막연히 제 능력을 세계적으로 크게 펼쳐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진로에 대한 방황 끝에 그는 국제대학원의 석사 과정을 밟아가기로 다짐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교육으로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며


다시 찾아온 방황 끝, 정 교수는 우연히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를 알게 됐다.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며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매력을 느꼈고 입사를 결정했다. 이후 그는 네팔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으로 교육 지원을 떠났다. 아이들을 위한 학습 환경을 마련하고 그들을 가르치던 정 교수는 공교육조차 당연하게 받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의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 공부해야 할 나이에 돈을 벌러 가는 아이들, 여성이란 이유로 교육받을 기회를 빼앗긴 소녀들이 있었다. “누구든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보호받아야 해요.” 학습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한 경험은 그가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 “제가 한 마을의 교육은 지원 해줄 수 있었어요. 근데 그런다고 국가가, 사회 전체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어떻게 더 도울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어요.” 이런 정 교수의 고민은 이후 그가 글로벌 교육 협력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을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끊임없이 배우고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던 그는 문득 어린 시절의 꿈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누가 저한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봤는데 영문학 교수라고 이야기했어요.” 기회가 되면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하며 배우고 쌓아온 것들을 후속 세대에게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정 교수. 현재 본교에서 학생들에게 세계시민에 대해 가르치는 그는 청년들이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관심 갖고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저만 알고 죽기에는 아까운 수많은 지혜와 시각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청년들과 나누고 싶어요.”


│human becoming, 되어가는 존재인 우리니까


정 교수는 교육을 미래지향적인 학문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 인간을 human being이라는 말보다는 human becoming이라고 지칭하고 싶어요. 인간은 이미 된 존재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되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는 인간이 becoming하는 과정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 강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육이 인간의 한계를 깨도록 도와야 함을 강조했다. 교육의 목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 교수는 교육에는 목표가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인간이 되어가는 존재인 것처럼, 교육 또한 한계가 없어요. 목표를 정하는 것이 오히려 한계를 설정하는 거죠.”


정 교수의 유동적인 교육 신념은 그의 삶과도 맞닿아있다. 그는 자신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교수, 혹은 시민단체의 일원으로만 비치지 않길 바랐다. ‘교육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있는 사람’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실제로 그는 ‘교육’이라는 키워드를 나침반 삼아 자신의 관심사와 순간의 목표에 기반한 유동적인 인생을 살아왔다.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며 살지는 않았으면 해요.” 정 교수는 “본인의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고 덧붙였다. 청년들이 자신을 프레임 안에 가둬 스스로에게 각박한 세상이 되지 않길 바란다는 정 교수.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라 조언하고 싶단 그의 따뜻한 말은 방황과 방향 설정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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