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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발표된 국토교통부의 조사에 따르면, 교통약자(지체·시각·청각장애인, 임산부, 고령자)의 약 60%가 주 5회 이상 외출한다. 교통약자의 단 1%에 불과한 시각장애인. 이들에게 대중교통은 얼마나 안전하고 편안할까. 11월 4일 점자의 날을 맞아 기자는 본교에 재학 중인 김태욱(영문 21) 학우와 본교 인근을 동행하며, 교통편의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알아봤다.

김태욱 학우가 카메라로 지하철 노선도를 확대해 보고 있다.

| 버스 노선도는 무용지물

| 음성안내는 운 좋아야 들려


본교 정문 앞 버스 정류장. 김 학우는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정류장 벽면에 부착된 노선도를 확대했다. “저에겐 저 글씨가 너무 작아요. 이렇게 종종 휴대폰 카메라를 활용해요.” 선천적으로 눈이 불편한 그는 시각장애인 3급이다. 대다수 시각장애인은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全盲)이 아닌, 김 학우처럼 시력이 어느 정도 잔존하는 저시력자에 해당한다. 그는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의 노선번호를 식별하기 어렵다. 적정거리까지만 초점이 맞춰진 볼록렌즈 안경을 끼고 생활하는 그에게 너무 가깝거나 먼 물체는 상이 여러 개로 쪼개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의 안내를 받아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내부는 하교하는 중학생들로 붐볐다. “이렇게 버스가 꽉 차 있으면, 바닥이 보이지 않아요. 버스 좌석과 구조를 파악하거나, 출구를 찾기도 어려워요.” 그는 원하는 정류장에서 내리기 위해 음성안내에 의존하지만, 이 또한 ‘운 좋으면’ 들을 수 있다고 표현했다. 이날도 버스 소음으로 안내 방송이 잘 들리지 않아 김 학우는 기자의 도움으로 홍대입구역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김 씨를 비롯한 시각장애인들은 버스의 교통편의에 만족하지 못한다. 2019년 디지털시각장애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 불편한 대중교통 1순위는 버스였다. 버스 정류장의 위치와 버스 노선번호를 확인하는 과정부터 쉽지 않기 때문이다. 5년째 안내견과 함께 생활하는 본교 재학생 조은산(심리 17) 학우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양방 통행인 도로에서는 버스가 향하는 방향을 식별하기가 어렵다”면서 “음성안내 차례대로 버스가 도착하지 않기 때문에, 버스 여러 대가 한 번에 들어올 때면 기사의 도움을 받는다”고 전했다.


| 지하철 출구 번호는 식별 불가

| 음향신호기 설치율도 미비해


김 학우는 정류장에서 내린 뒤 홍대입구역 1번 출구로 향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경로가 다소 복잡해, 그는 에스컬레이터 방향을 혼동하기도 했다. 역에 들어서자 그는 보호자 동반 1인까지 사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 우대권을 이용해 개찰구를 통과했다. 지하철 내에는 교통약자를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었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모서리에 부착된 붉은색 미끄럼 방지 테이프가 대표적이다. “이 테이프가 계단을 구분할 수 있게 해줘요. 이게 없으면 계단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어서 넘어지기도 해요.” 


계단 모서리에 미끄럼방지 테이프가 붙어 있다.

계단은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했으나 김 학우는 기둥에 붙은 노선도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이전처럼 카메라로 노선도를 확대해 지하철 방향을 확인한 뒤, 안내방송을 따라 지하철에 탑승했다. 신촌역에 도착하자 지하철 내 천장 쪽 전광판 하단에는 ‘신촌’이라는 글자가 표시됐다. 그러나 이 또한 김 학우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김 학우는 “화면이 저렇게 큰 데 왜 다 활용하지 않고 밑에 조그맣게 표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광판의 4분의 3은 광고 및 안내방송으로 채워졌다. 기자에게는 평소 정차역을 파악하는 데 유용했던 전광판이었지만, 그에겐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생경하게 다가왔다. 제일 큰 난관은 출구 번호 식별이었다. “저렇게 천장에 출구 번호가 붙어 있잖아요. 저는 저 번호가 너무 작아서 구분이 안 돼요.” 경기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들은 출입구 안내표시판의 글자 크기를 가장 불편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학우를 비롯한 시각장애인들은 교통편의 시스템이 비교적 잘 마련된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지하철 역사 중 약 70%에 달하는 곳에 벽면 점자가 제대로 표시돼 있지 않다. 2000년부터 설치된 음성유도기 또한 유동 인구가 많은 신촌, 혜화, 청량리, 당산, 성수 등에는 없다. 음성유도기란 시각장애인이 소지한 리모컨을 누르면 음성으로 출구 방향과 현 위치 등을 알려주는 기계로, 지하철 벽면에 부착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21년 음성유도기 미설치 역사를 위한 모바일 앱을 당해 상반기 내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 미개발 상태다. 교통약자를 위해 서울교통공사가 출시한 ‘또타지하철’ 앱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원 안내 서비스만 있을 뿐 음성유도 서비스는 없다.

학우가 카메라로 출구 번호를 확대해 보고 있다.


김 학우에게 열차 내 정차역 안내 글자 크기는 매우 작다.


| 대중교통 개선 나선 경기도

| 천천히 기다리는 배려가 우선돼야


시각장애인의 교통편의를 개선하고자 경기도는 대중교통 개선에 나섰다. 경기연구원 교통물류연구실 지우석 연구원은 ‘교통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시각장애인 이동 편의’ 연구에서 △시각장애인 전용 대기지점 설치 △교통카드 단말기 위치 표준화 △출입구 번호표시 글씨 크기 확대 등을 제안했다. 이를 반영해 경기도에서는 모든 버스의 단말기 위치를 통일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차는 표준화된 위치에 따라 단말기를 설치해 생산하기로 제조사와 협의했다. 지 연구원은 “단문형 버스는 비접촉 버스요금 결제 서비스가 설치된 상태며, 내년 상반기 중으로 양문형까지 설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각장애인을 향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학우는 “배차 간격을 맞추기 위해 제가 타고 내릴 때 시간이 걸리는 걸 못 견디시는 기사님도 있었다”며 “시각장애인 승객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김태욱 학우와 함께한 대중교통은 기자에겐 낯선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보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삶을 경험해온 시각장애인. 누구에게나 안전하고 편리한, 진정한 의미의 ‘대중’교통을 고민해야 할 때다.


글·사진 | 차의진 기자 iamcha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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