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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강평야가 끝없이 펼쳐진 저녁하늘에 노을이 진다. 종일 논밭에 머무르던 가창오리 떼 무리가 삽교천을 가로질러 날아오른다. 드넓은 갈대숲 사이로 수원청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찾는 곳, 사람보다 야생생물의 발걸음이 잦은 이곳은 당진시 우강면에 위치한 소들섬이다. 한 무리의 새가 날아간 자리에 2개의 거대한 송전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들쉼터 입구로는 중장비 8대가 연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 뒤, 기자 앞으로 한 트럭이 멈춰섰다.


평범했던 시골부부,

투쟁 현장 뛰어들어 


트럭에서 내린 이들은 이봉기, 유이계 씨 부부였다. 올해로 67, 61세를 맞이한 부부의 손에는 소들섬 지키자는 문구의 깃발이 들려있었다. 소들쉼터 입구는 주민들이 붙여놓은 송전탑 건설 반대 현수막들로 빼곡했다. 반대편에서는 송전탑 기반 공사가 한창이었다. 2014년 한국전력의 송전선로 건설 계획을 듣게 된 이후, 평범한 농부였던 부부는 투사가 됐다. 본인과 아이들이 나고 자란 소들섬이 이대로 훼손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봉기 씨는 우강면 철탑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아내 유이계 씨는 부장리 대책위원장을 맡아 건설 추진 관련 자료들을 모으는 데 몰두했다. “당진시청, 충남도청, 국토관리청, 금강유역환경청, 한전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제발 우리 마을에 철탑만은 꽂지 말아 달라고 항의하고 쫓아다니고, 그게 지난 8년의 삶이었죠.” 


소들섬을 지키기 위해 부부는 한전이라는 거대권력에 맞섰고, 그날 이후 부부의 세월은 멈췄다. 지난해 7, 이봉기 씨는 공사현장에서 열린 송전탑 건설 규탄 집회에 참석했다. 정부에게 허가받은 집회였다. 그럼에도 집회가 끝난 뒤, 이봉기 씨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한전은 이봉기 씨를 포함한 주민 6명을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했고, 이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공사 방해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한전의 암묵적인 경고였다.


▲ 소들섬쉽터 입구에 주민들이 꽂아놓은 깃발들. 


송전탑 기반 공사가 한창이다.


 1 야생생물 보호구역 지정돼

102일 간 주민들의 천막농성 결과  


소들섬이 위치한 당진 삽교호 일대는 주요 농업용수 공급원이자 대규모 겨울 철새도래지다. 당진시 환경정책과에서 실시한 생태조사 결과 삽교호 일대에는 큰고니, 흰꼬리수리, 가창오리 등 10여 종의 1, 2급 천연기념물 및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었다. 지난 1 28, 환경부는 소들섬의 생태적 가치를 인정해 소들섬을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주민들이 당진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102일간 철야 농성을 한 결과였다.


소들섬이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진행되면 공사를 중단하지 않을까, 주민들은 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시위에 돌입했다. 민간단체 소들섬을 사랑하는 사람들 상임대표 김영란 씨는 보호구역 지정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고 회고했다. “102일 동안 당진시청 앞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위했습니다. 환경부에도 거의 매일 찾아갔죠. 노력 끝에 환경부 장관님으로부터 소들섬을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어요. 진작에 지정됐어야 하는데, 너무 늦게 지정된 거죠.”


2014년부터 계획 발표돼

본격적인 공사는 작년부터 

 

소들섬 주민들은 한전 측이 행정절차와 법적 권고를 위반한 채 공사를 재개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한전의 계획은 당진시 송악읍과 아산시 탕정면 사이를 잇는 총길이 35.6㎞ 345kV 송전선로를 짓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강면 구간에 6개의 송전탑을 설치하고, 이 중 1개를 소들섬에 세우려 하는 것이다. 한전은 2014년 해당 사업에 대한 기본 계획을 발표한 뒤, 2015 6 22일 산업부에서 송전탑 6개에 대한 전원개발사업실시계획을 승인받았다. 그 후로 6년간 미착공 상태였다.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한 것은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커진 지난해 7월이었다. 환경영향평가법 제32조에 따르면 사업계획 등을 승인하거나 사업계획 등을 확정한 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5) 내에 사업을 착공하지 아니한 경우 환경부 장관에게 재협의를 요청하고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해당 과정에서 생태지역 주변과 농림지역의 면적이 7500m² 이상일 경우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소들섬의 송전탑 건설 현장 인근 적치장과 진입로 등의 면적은 9670m²으로 환경영향평가의 대상이다. 그러나 해당 절차는 생략됐다.

 

법과 행정 절차 무시한 한전

민원이 너무 많아서··· 묵묵부답  


지난 3 30일 당진시는 한전 측에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한전은 송전선로 사업은 소들섬이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추진되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해당 구간은) 환경평가 재협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한전은 집행정지 신청과 본안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집행정지 신청을 최종 기각하며 한전 측에 공사를 즉시 중지하라고 판결했다. 한전은 이를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했다. 공사를 중단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전 측 지중화사업 관계자, 우강면 담당자, 충남본부 관계자는 모두 민원이 너무 많다. 현재로서는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현재 모든 송전탑의 기반공사는 마무리됐다. 소들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보인 36번과 37번 송전탑은 이미 완공된 상태였다. 그 뒤로 정확히 반절이 올려진 35번 송전탑의 나머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34번과 38번 송전탑 역시 위로 철탑 조립만을 남겨뒀다. 소들섬 한가운데서는 마지막 39번 송전탑 설치를 위한 굴착공사가 한창이었다. 환경영향평가는커녕 개발허가까지 나지 않은 곳이다.


완공된 36번, 37번 송전탑. 


본안소송 결과 올 11월 발표 예정

환경청·당진시청 행정조치 미흡


본안소송 1심 판결은 올해 11 23일에 내려질 예정이다. 김영란 씨는 한전 측이 올 10월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1심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공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패소하더라도 이미 완공된 상황에 대해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당진시와 환경청의 미흡한 행정조치 또한 문제로 제기됐다. 당진시 법률소송 대리인을 맡은 하승수 변호사는 (한전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는 상황에 대해 하루빨리 진입로 및 작업장 사용중지 명령과 같은 후속 행정조치를 내려야 하나, 당진시는 이를 미루고 있다. 환경영향평가제도와 야생생물보호법의 주무관청인 환경청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상황 또한 문제라며 관청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건강권·생태 파괴 우려돼

주민들이 원하는 건 지중화 


우강면 주민들이 요구하는 건 공사 자체를 취소하는 것이 아니다. 송전선을 지하에 묻는 지중화 방식으로 진행해달라는 것이다. 동일한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신평면 내의 5.9㎞ 구간은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해 이미 지중화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소들섬은 1979년도 삽교천이 막히면서 퇴적물에 의해 하중도로 생긴 모래톱섬이다. 호수와 평야를 동시에 보유한 국내 유일의 예당평야인만큼, 삽교호 일대는 철새의 낙원이다. 이중 소들섬은 매년 45만 마리의 가창오리들이 번식지인 중국 동북부로 이동하기 전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르는 주요 월동지이다. 지난 5 2일 실시된 현장 조사 결과에서 소들섬에 서식하고 있는 조류는 23종으로 총 851마리가 관찰됐다. 이중 1급으로 지정된 흰꼬리수리를 비롯하여 11종이 멸종위기종이며, 9종이 천연기념물이다. 현장 조사를 진행한 주용기 전북대 무형유산정보연구소 연구원은 환경영향평가서 표기 지역으로 확대한다면, 더 많은 종과 개체수가 관찰되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345kV의 초고압 송전선로가 지상으로 설치되면 주민들의 건강권이 침해받는 것은 물론, 이곳을 찾는 수많은 철새들이 전선에 걸려 숨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농경지 훼손으로 야생생물의 삶터 또한 사라진다. 하 변호사는 유독 소들섬이 있는 당진시 우강면 일대에만 지중화를 거부하고 있다 인구가 적고 고령화된 지역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인지, 소들섬처럼 생태적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에 굳이 지상으로 건설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전했다.

 

▲ 주민들이 요구한 지중화 노선과 한전이 진행 중인 송전탑 노선.


철탑공화국 대한민국

무분별한 송전탑 건설 끝내야 


서울권 대도시는 전기 부족분을 타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2019년 발표된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별 송전탑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765kV 초고압 송전탑은 1 40여개다. 그중 79%의 초고압 송전탑이 강원, 경기, 충남에 집중돼 있다.


이 중 지중화 비율은 1~3% 남짓이다. 하 변호사는 지금 강원도에서도 50만 볼트 초고압송전선이 추진되면서 주민들과 한전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한전은 그때마다 특별지원금이라는 돈을 풀어서 주민들을 회유하려 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기후 위기를 고려하면 어차피 현재의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은 유지될 수 없다. 전기 생산지역과 소비지역의 괴리를 줄이고, 환경친화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반복되는 농촌 갈등을 끝내야 함을 강조했다.

밀양 사태 이후 14

전기는 여전히 눈물을 타고 흐른다 


2013 12 6, 밀양시 상동면에 거주 중이던 유한숙(71) 씨는 농약을 마시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송전탑을 보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송전탑에 반대하며 몸에 불을 지른 이치우(당시 74) 씨 이후 마을의 두 번째 희생자였다. 마을 주민 2명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해당 사태 이후 14년이 흐른 지금, 밀양 송전탑 사건은 소들섬을 포함한 전국 농촌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유이계 씨는 우강면이 이제까지 잘 버텨왔었다고 말한다. “당진에 몇 개의 철탑이 있는 줄 아세요? 526개예요. 앞으로 300개가 더 세워진대요. 14개 읍면 중 지금까지 우강면만 깨끗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제야 우리 차례가 온 거죠. 그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요. 지더라도, 싸울 때까지 싸울 겁니다.”


| 소들섬 노을이 저물 때


피해보상금이니 뭐니, 저는 다 필요 없어요. 나중에 필요가 없어지면 전선은 걷을 수 있겠죠. 그런데 한번 망가진 땅은, 다시 못 되돌려요. 제 손주들에게 꼭 이 땅을 물려주고 싶어요.”


소들섬은 소 두 마리가 솟아오른다는 의미이다. 본래 소들섬은 무명의 섬이었다.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2016, 주민들은 소들섬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섬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입구에 소들섬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갤러리와 포토존도 만들었다. 


해가 저물 때쯤, 소들섬 입구에 한 무리의 자전거 동호회가 들어섰다. 이봉기 씨는 자연스럽게 이들을 붙잡고 소들섬을 소개했다. 다시 한번 방문해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소들섬을 둘러싼 우강평야 일대는 한 무리의 여름 철새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봉기 씨는 오늘도 이곳, 소들섬 입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들섬을 지켜달라고 외친다.


 평생을 함께해온 소들섬을 바라보는 이봉기 씨.


 ▲ 한 무리의 철새가 소들섬 일몰과 함께 날아오르고 있다. (사진 제공 : 사진작가 유광호)          

                        

글·사진 | 이나윤 기자 sugar03@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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