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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학부 전체 개설교과목 중 20.9%를 차지하는 전공 영어강의. 본보에서 지난달 27일부터 7일까지 본교 학우 2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전공 영어강의 관련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5%(161명)가 전공 영어강의에 불만족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큰 이유로는 △명확도와 전달력이 떨어져서(61.5%)가 제시됐고, △의무 수강 요건을 채우기 위해 부득이 영어강의를 선택해야 해서(52.8%), △영어강의 개설 비율이 부적절해서(50.3%), △영어 실력이 성적에 영향이 커서(36.6%), △실제 수업은 한영 혼용 또는 모두 한국어로 진행돼서(16.8%) 등이 뒤를 이었다.



교·강사와 학우 모두에게 부담돼

‘말로만 영어강의’인 경우도


본교는 지난 2006년부터 전공 영어강의 수강을 졸업요건으로 지정했다. 본교 학사지원팀 관계자는 “학우들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공 영어강의 의무 수강의 목적을 밝혔다. 이에 따라 08학번 이후 모든 학우들은 전공 영어강의를 5과목 이상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다만 국어국문학, 유럽문화, 중국문화 등 일부 영어강의 개설이 어려운 학과를 단일전공하는 경우에는 이 요건이 적용되지 않는다.


본보 취재 결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교·강사와 학우들 모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교 최 모(심리 22) 학우는 “내용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이해해야 해서 한국어강의보다 학습 시간이 두 배 이상 소요된다”고 말했다. 철학과 정재현 교수도 “영어강의는 1.5배 정도 준비 시간이 더 걸린다”며 “영어를 쓰지 않다가 갑자기 사용하게 되는 첫 날에는 긴장된다”고 전했다.


‘말로만 영어강의’인 경우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지난 학기 본교 유학생 A 학우가 수강한 영어강의는 수업과 시험 모두 한국어로 진행됐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담당교수는 수업방식이 교수 재량이라며 수강취소를 권했다. A 학우는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수업을 따라가는 데에 많은 불편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신규 전임교원, 영어강의 개설 의무

교·강사들 “제도 개선 필요”


본교는 지난 2008년부터 신규 전임교원 임용 시 매 학기 1개 이상의 영어강의를 개설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본교 교무팀 이재호 직원은 “교육 국제화, 해외 대학과의 교환학생 협정 체결·유지, 외부 대학평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책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본교 교·강사 사이에서는 신규 전임교원에 대한 영어강의 의무화 정책이 교원들의 각기 다른 언어적 배경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교 사학과 박단 교수는 영어권에서 학위를 취득하지 않은 교원에게도 영어강의를 의무화하는 정책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국내 혹은 비영어권에서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더 적합한 분야가 있다”며 “영어강의 때문에 전공에 더 적합한 교원을 임용하지 못하는 것은 학과나 학교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본교 교육대학원 이예경 교수 역시 “제도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개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균관대는 지난 2022년 2월부로 신규 전임교원에 대한 임용 후 국제어강의 의무 원칙을 삭제했다.


제도 개선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 직원은 “교육 국제화의 기본은 영어강의”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영어강의 개설 의무화의 취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제도 보완을 위해 비영어권 국가에서 학위를 취득한 자에 한해 해당 국가의 언어로 강의해도 영어강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인정하고는 있다고 언급했다.


학과별 개설 비율 천차만별

영어강의 부적절한 과목들도


학과별로 영어강의 개설 비율에 차이가 크다는 점도 문제다. 본교 학사지원팀에 따르면, 이번 학기 영어강의의 비율이 가장 높은 학과는 80%의 비율을 기록한 글로벌한국학과였으며, 가장 낮은 학과는 교직이수자만 전공학점으로 인정되는 ‘역사교과논리및논술’을 제외하고 영어강의가 개설되지 않은 사학과였다. 이는 모든 과목이 영어강의로 진행되는 영문학부 미국문화전공, 모든 과목이 한국어강의로 진행되는 국어국문학과를 제외한 수치다.


사학과는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전공 영어강의가 전무했다. 사학을 단일전공하는 본교 B 학우는 “두 학기 동안 영어강의를 이수하지 못했다”며 “다음 학기가 졸업인데 졸업요건을 충족하지 못할까 걱정”이라 전했다. 이에 대해 사학과장 박단 교수는 “최근 부임한 전임교원 2명은 한국사 전공이고 다른 1명은 중국사 전공”이라며 “한국사 전공 교원에게는 영어강의가 의무가 아니며 중국사 전공 교원은 중국어 강의로 대체 가능해 영어강의가 의무인 전임교원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향후 영어강의 개설 목표치를 달성하고자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심리학과 전공필수선택과목인 ‘사회심리학’은 2015년부터, ‘심리통계’는 2018년부터 영어강의로만 개설되고 있다. ‘인지심리학’과 ‘이상심리학’ 역시 전임교원의 연구학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어강의 위주로 개설되고 있다. 본교 김 모(심리 20) 학우는 “대부분의 전공필수 과목들이 영어강의로 개설되고 있다”며 “한국어강의를 선택할 권리가 보장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성균관대의 경우 전임교원이 영어강의 위주로 과목을 개설, 다른 분반은 비전임교원이 한국어강의로 개설하도록 하고 있다. 이예경 교수는 직전학기에 영어강의로 개설됐던 과목을 다음 학기에는 한국어강의로 개설하도록 학교본부에서 유도하고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영어강의가 적절하지 않은 과목에 대해서도 영어강의가 이뤄지는 경우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중국문화학과는 학과 특성상 전공 영어강의 필수 이수 예외가 적용됨에도 일부 과목이 영어강의로 진행됐다. 지난 학기 해당 과목을 수강했던 본교 C 학우는 “중국어 용어를 영어로 배워야 해 수업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이 수업은 한국어강의가 적절했을 것”이라 전했다. 이외에도 한자어가 자주 등장하는 종교학과의 유교 계열 과목, 철학과의 동양철학 과목 역시 영어강의가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우빈 기자 woobinlee@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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