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걸작을 만든 예술가’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대부분 완벽주의에 빠져 창작에만 몰두하다 결국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 인간 군상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 <위플래쉬>와 <블랙 스완>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가 어떻게 파멸로 내몰리는지를 보여준다.

▲ 영화 <블랙 스완> 스틸컷.
| “잘했다는 말보다 해로운 말은 없어”
| 흑조가 되기 위한 수면 아래 발버둥
<위플래쉬>는 신입생 드러머 앤드류가 유능하지만 다소 폭력적인 성격의 밴드 지휘자 플레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다. 최고의 드러머를 길러내겠다는 일념과 비뚤어진 성격이 합쳐진 플레처는 앤드류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다. 앤드류는 그런 플레처의 고압적인 태도를 두려워했으나, 결국 플레처의 성격에 적응해 자신도 곧 병적인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심지어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인간관계마저 모두 포기한다. 그는 여자친구와 가족을 외면한 채 드럼 연습에 몰두하고, 교통사고를 당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공연장으로 향한다.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는 <위플래쉬>의 앤드류보다도 더 파멸적인 결말을 맞는다. 발레단의 단원인 니나는 <백조의 호수> 공연의 주연인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맡게 된다. 어머니의 품속에서 순종적으로 자라온 니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백조 연기는 잘 선보이지만, 자유롭고 관능적인 흑조를 연기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발레단의 단장 토마스는 니나에게 완벽한 흑조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타락한’ 삶을 살아봐야 한다고 끊임없이 압력을 가한다. 설상가상 흑조 이미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신입 발레리나인 릴리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자, 니나는 거울 속 자신이 본인을 노려보고 손톱 거스러미를 뜯다 손가락의 피부가 전부 뜯기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흑조 배역을 완벽히 소화해 내기 위해 어머니에게 반항하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일탈을 시작하며 그의 환각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러한 환각은 공연 당일 절정에 달하고, 그는 결국 자신이 경쟁자 릴리를 죽였다는 망상에 빠진 채 자신의 복부를 거울 조각으로 찔러 버린다.
|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 강요받는 자기 착취적 완벽주의
<위플래쉬>와 <블랙 스완>은 모두 완벽주의에 갇혀 자신을 좀먹는 주인공들을 보여준다. 물론 그들이 이뤄낸 예술적 성취는 뛰어나다. 앤드류는 마지막 연주에서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플레처마저도 감탄할 천상의 드럼 연주를 선보인다. 흑조 연기를 끝마친 니나는 관객석에서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받고, 지금껏 자신의 흑조 연기를 못마땅해하던 단장에게서도 좋은 평가를 얻어낸다. 첫 주연 무대임에도 극한의 노력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을 착취해 이뤄낸 성취 끝에는 파멸이 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앤드류는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넣던 플레처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스스로와의 싸움에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는 플레처 때문에 자신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영화 중간 그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못하는 삶을 90세까지 사는 것보다는 요절하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위플래쉬>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앤드류는 술과 마약으로 서른이 되기 전에 단명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니나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발레리나들이 꿈꾸던 백조와 흑조 자리를 당당히 꿰찼으나, 자신을 옥죄던 환각과 다투다 생긴 상처로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두 주인공은 모두 타인에게 인정받는 성공한 예술가가 됐지만,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을 잃은 것이다.
‘완벽한 성취를 이뤄내야만 한다’는 집착은 비단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작은 실수조차 용납할 수 없는 완벽함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완벽주의에 잠식돼 극한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인다면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피폐해진 나 자신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수많은 현대인들을 또다른 앤드류와 니나로 만들어내고 있는게 아닐까.
글 | 서다영 기자 dayoung06@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