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채로 인간의 심장을 꺼내고, 제단에 바친다’, ‘어린아이들만 모아 인신공양을 한다’. ‘아즈텍(아스테카) 문명’은 오랫동안 잔인한 인신공양을 즐겼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 자극적 꼬리표 아래 가려졌던 아스테카 문명의 진정한 모습이 이곳에 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5월 3일부터 8월 28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전시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아스테카>다. 전시장을 거닐며 아스테카 사람들이 남긴 유물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어느새 그들의 삶과 생활 구석구석을 이해하게 된다.
‘아스테카’는 14세기 초부터 16세기 초까지 멕시코 중앙공원 지역에서 번성했던 문명과 민족을 일컫는다. 아스테카 제국에 공물을 바치고 지배받은 수십 개의 도시국가를 모두 포함한 것이 아스테카 문명이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신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자연 곳곳에 고유한 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신전을 짓고 제의를 올려 신에게 감사를 표했다. 따라서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신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 태양이 되기 위해 희생한 신들
첫 번째 태양은 홍수에 떠내려가서, 두 번째 태양은 호랑이에 잡아먹혀서, 세 번째 태양은 불에 휩쓸려서, 네 번째 태양은 폭풍우에 날아가서 사라졌다. 태양의 마지막 파괴가 일어난 후, 수많은 신들이 모여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에서 회의를 열었다. ‘누군가 불꽃 속에 몸을 던져 희생해야만 태양이 생겨날 것이다. 누가 세상에 빛을 가져올 것인가!’ 논의 끝에 희생양이 된 신은 부유한 테쿠시스테카틀과 가난한 나나우아친이었다. 거대한 불이 지펴졌다. 뜨거운 불의 열기가 두려웠던 테쿠시스테카틀이 주저하는 사이 나나우아친이 주저 없이 먼저 불 속에 몸을 던져 태양이 되었다.
이렇게 나나우아친은 태양의 신 토나티우로 거듭난다. 뒤늦게 불 속에 뛰어든 테쿠시스테카틀 역시 태양이 되었으나,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었기에 한 신이 테쿠시스테카틀에게 토끼를 던졌다. 그렇게 그는 달이 되었다. 해와 달이 하늘에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모든 신들이 스스로의 피를 내어 희생했다. 이것이 아스테카인들이 믿었던 창세 신화다. 아스테카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 창조됐기 때문에, 이 땅 위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은 태양을 탄생시키고 움직이게 한 신들의 희생에 보답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에 감사를 표하고 세상이 계속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 성스러운 제물, 피와 심장을 바쳤다.
| 유물로 만나는 아스테카인들의 삶
전시장에 발을 들이면 앞서 소개한 신화의 영상이 가장 먼저 반긴다. 아스테카 문명의 걸작 ‘태양의 돌’을 재현한 조형물 위로 투사되는 영상은 신화를 마치 옛이야기처럼 친근하게 소개한다. 곁에 함께 전시된 각종 유물에는 신들이 조각돼 있다. 이를 통해 전시회의 1부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은 아스테카 문명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 관람객에게 아스테카 문명 속 신화의 위치와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전시장의 안쪽으로 조금 더 발을 옮기면 이번에는 2부, 아스테카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다. 벽면에 나타난 ‘멘도사 고문서’의 그림에는 매운 고추 연기를 이용해 자식을 훈육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친근하게 그려진다. 그 밑에는 그릇, 가면, 술잔과 가락바퀴와 같은 생활용품이 전시됐다.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가족이었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물건의 대부분은 가족 내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농사일 외에도 남성은 토기와 가구를 만들거나 집을 지었고, 여성은 직물짜는 일을 했다. 남은 직물은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고 공물을 납부하는 데 사용했다.
| 정복 전쟁을 통해 누렸던 부와 번영
전시장의 3부로 이동하면 가장 먼저 반짝이는 검은 돌, 흑요석으로 장식된 화살촉이나 칼 등의 각종 무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쟁은 아스테카의 문화에서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무기 역시 아스테카 사람들의 큰 관심거리였다. 그 중 흑요석을 이용해 가공한 무기는 큰 가치를 지녔다. 전쟁이 잦았던 탓에 아스테카는 전사를 중요하게 여겼고 신분제 사회였지만 평민도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귀족이 될 수 있었다.
아스테카에서 전쟁을 중요시한 이유는 아스테카가 정복 전쟁을 통해 부귀해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근방의 도시국가들은 다양한 민족과 언어로 이뤄져 있지만 무역로로 연결돼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유통했다. 아스테카·테스코코·틀라코판 세 나라는 삼각동맹을 맺어 새로운 지역을 정복해 군사적 보호를 제공하는 대신 공물을 요구했다. 이러한 공물을 통해 아스테카는 번영을 누렸으며, 먼 곳의 정복 도시국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도 했다.
| 잔인한 인신공양과 신성한 제의, 그 사이
아스테카의 중심도시 테노츠티틀란을 소개해둔 관을 지나고 나면 신성 구역을 축소해 재현한 모형이 놓여있다. 이를 태블릿으로 비추면 증강현실을 통해 재현해둔 당시 신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이곳에서 신들에게 제의를 올리고 감사를 표했다. 제물로는 주로 금이나 옥으로 만든 심장 모형을 바쳤다. 그 외에도 꽃, 조개, 그리고 늑대 같은 동물을 바치기도 했다. 신성 구역에서 발견된 인간의 유골은 인간 또한 제물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아스테카인들은 이것이 세상을 움직이기 위한 신성한 희생이라고 믿었다.
아스테카 문명은 16세기 초, 스페인의 침략으로 막을 내렸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아스테카 문명은 잔혹한 전쟁과 무자비한 인신공양의 문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침략을 정당화하고 새로운 종교를 강요하기 위해 정복자들이 아스테카 문명을 왜곡한 결과였다.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아스테카>는 자극적으로 과장된 아스테카 문명의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들의 삶을 진실되게 바라보기를 설득한다. 전시를 통해 아스테카 문명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편견 없는 시각으로 이들을 이해하는 데 한 발 내디뎌 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 | 김현주 기자 hj210031@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