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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5,000m의 심해저, 소리 없이 흐르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천고의 세월을 거쳐 누적된 검은색 퇴적물 위로 생물의 흔적이 보인다.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생물 사체들이 분해되면서 가라앉는 하얀색 부유물을 받아먹는다. 이 현상은 마치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여 ‘바다눈’이라 불린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빛이 반짝인다. 초롱아귀의 이마에 달린 긴 촉수 끝에서 불빛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빛을 보고 따라온 물고기는 머지않아 초롱아귀의 식사가 될 운명이다.


심해와 그 속 생물들의 모습을 직접 목도하기는 어렵다. SF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심해 생명체의 낯선 생김새는 외계 생물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심해는 현실과 동떨어진 미지의 공간이 아니다. 심해란 대략 수심 2km 이상의 바다로, 전체 바다의 무려 90%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심해 생물이라 부른다.


심해 생물들은 혹한의 추위와 끔찍한 압력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기이한 생김새와 독특한 습성을 갖게 됐다. 그들은 엄청난 수압을 견디기 위해 몸속에 공기 대신 물이나 기름을 채워 넣는다. 또한 심해 생물의 8할은 사냥이나 번식을 위해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를 지닌다. 빛이 들지 않아 대개 눈은 거의 퇴화됐으나 반대로 간간이 어두운 곳에서도 먹이를 잘 보기 위해 눈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생물도 있다. 모두 심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다.


심해생물대형화, 심해 생물이 거대해진 이유



▲ 심해에 사는 대왕오징어. [출처 | 구글]


어떤 심해 생물들은 심해에 살지 않는 친척 종보다 몸집이 훨씬 크다. 예를 들어 심해의 대왕오징어는 몸길이가 10m를 훌쩍 넘는다. 2cm 내외에 불과한 일반적인 단각류*와 달리 심해의 거대 단각류는 30cm 이상으로 자라기도 한다. 이처럼 심해 생물들의 몸집이 커지는 현상을 가리켜 이른바 ‘심해 거대증’이라 일컫는다.


2018년 고생물학자인 윌리엄 박사는 심해 생물들의 몸집을 거대하게 만든 원인은 ‘낮은 온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몸집이 커질수록 부피 대비 표면적이 작아지기 때문에 열이 덜 방출돼 낮은 온도의 심해에선 큰 몸집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즉 저온 환경에 사는 동물일수록 몸집이 커지는 ‘베르그만의 법칙’이 바다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베르그만의 법칙은 주로 포유류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심해 생물에게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한 심해의 일정 깊이부터는 수온이 거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낮은 온도만으로 심해 거대증을 설명할 수 없다는 반발도 제기됐다.


이에 심해 생물학자 케빈 젤니오는 심해 거대 등각류들이 몸에 상당량의 지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몸집이 클수록 지방을 저장할 공간이 많아지고, 먹이가 적은 심해에서 장기간 에너지를 비축하는 데 유리했을 거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즉 생존을 위해 몸속에 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저장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몸이 커지면 소비되는 에너지인 신진대사율도 비례해 증가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심해 생물은 같은 무게의 육상 동물에 비해 훨씬 낮은 대사율을 가진다. 실제로 남극 심해에 사는 약 500kg의 거대 오징어에게 하루에 필요한 먹이량은 고작 30g에 불과하단 사실이 드러났다.


작은 심해어가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방법



▲ 샛바늘치과(랜턴피쉬). [출처 | 구글]


심해 어류 생물량의 65%를 차지하는 ‘샛바늘치과’는 2cm~15cm의 크기로 몸에서 빛을 낸다고 하여 ‘랜턴피쉬’라고도 불린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이 작은 심해어는 이들이 지구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감소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당시 미해군 순찰요트에서는 음파탐지기를 이용한 수심 측정이 이뤄졌다. 이는 초음파가 해저 바닥에 부딪혀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수심을 재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음파탐지기에서 기묘한 현상이 관측됐다. 기존에 3,000m로 추정됐던 해역의 수심이 음파탐지기에선 밤에는 100m, 낮에는 500m로 표시됐던 것이다. 이후 음파탐지기로 측정된 깊이는 실제 해저 바닥이 아닌 가짜 바닥, 즉 심해에 사는 크릴과 어류 등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동물 군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들은 낮에는 수심 500m~1000m쯤에 머물러있다가 밤이 되면 표층에 사는 플랑크톤을 잡아먹기 위해 10m~200m 구간으로 대규모 수직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군집을 이루는 생물의 상당수가 랜턴피쉬다. 플랑크톤은 대기에서 바다 표층으로 녹아든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광합성을 한다. 랜턴피쉬는 표층에서 플랑크톤을 섭취하고 다시 심해에 내려와서 배설을 하는데, 이 배설물들은 해저로 빠르게 침강해 탄소를 효과적으로 격리시킨다. 실제로 랜턴피쉬에 의해 심해에 가둬지는 탄소량은 연간 무려 16억 5,000만톤으로, 해양으로 격리되는 총 탄소량의 16%에 달하는 수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지우 기자 jiwoo8155@sogang.ac.kr


*단각류 : 절지동물 갑각류에 속하는 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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