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째 신문이 발간되는 동안 처음 맡게 된 기자수첩에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긴장했던 첫 취재나 유독 나를 힘들게 했던 기사들을 떠올리면 할 이야기는 많았지만 결국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는 식의 피상적인 소감문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의미 있는 글을 써 보고 싶어서, 처음 학보에 들어왔을 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적어 보려 한다.
학보를 막 시작했을 무렵, 나는 새로운 도전에 들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기자라는 일에 한 걸음 다가간 것 같았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리고 자신감도 가득했다. 어려웠던 학보사 시험에 합격했으니,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기롭게 품었던 마음과는 달리, 실제로 해본 학보 일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기사에 쓰이는 단어 하나라도 허투루 쓸 수 없었고, 취재 과정에서 준비한 아이템이 갑자기 엎어질 때도 있었다. 매 호가 발행될 때마다 볼품없는 글을 썼다는 사실에 괴로웠으며, 죽기 직전의 글들이 선배 기자님들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이 조직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정신 차려 보니 가까워졌다고 믿었던 기자라는 꿈은 오히려 더 멀어져 있었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글쓰기 전공 수업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았다. 교수님께서 글을 쓰기 전과 직접 써 본 뒤의 간극을 며느리와 쥐며느리의 차이에 비유해 설명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 말 덕분에 내가 느꼈던 괴로움이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겪는 보편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계속 쓰다 보면 지금의 고통도 언젠가는 옅어질 거라고 기대하게 됐다.
그래서 일단 계속 써 보기로 했다.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스스로를 며느리라고 착각하는 것보다는, 서툴더라도 쥐며느리인 채로 한 줄이라도 더 적어 보는 편이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지금보다는 덜 괴롭게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며, 당분간은 쥐며느리 상태로 버텨볼 생각이다.
최윤서 기자 choi45@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