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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성 <무.생.물(無.生.物)>.[출처 | 김영성 SNS]


투명한 유리잔 안으로 일렁이는 물과 느긋하게 부유하는 한 금붕어가 보인다. 언뜻 보면 그저 물속의 금붕어를 찍은 평범한 사진 같다. 그러나 기둥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유리컵을 발견한 순간, 해당 작품이 사진이 아닌 붓으로 탄생한 그림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현실과 매우 흡사한 예술 경향을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즉 극사실주의라고 부른다.


| 미술사의 무대에 다시 오른 ‘극도의’ 리얼리즘


하이퍼리얼리즘은 사진처럼 대상을 매우 사실적이고 정밀하게 묘사하는 예술 경향을 뜻한다. 여기서 ‘하이퍼(Hyper)’는 ‘극도로’라는 뜻이다. 즉, 하이퍼리얼리즘은 극도의 리얼리즘으로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모습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1960년대에 등장했다. 당시는 사진기가 등장하며 리얼리즘이 막을 내리고 추상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추상주의는 실재가 없는 내면세계를 표현하다 보니, 무엇을 그렸는지 한눈에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다시 현실을 재현하는 리얼리즘 미술로의 복귀를 갈구하는 이가 늘어났고, 그 흐름 속에서 하이퍼리얼리즘이 등장했다.


| 렌즈의 시선에 붓의 섬세함을 더하다


‘우리 눈에 비친’ 현실을 그리는 리얼리즘과 다르게 하이퍼리얼리즘은 ‘우리 눈이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까지 묘사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이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사진기다. 아무리 커다란 물체라도 자세히 보려 가까이 다가가면 되레 초점이 흐려진다. 인간의 눈으로는 보는 데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기는 인간의 눈이 놓치는 세세한 부분을 포착할 수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평소에 발견하기 어려운 얇은 털 한 가닥도 확대 촬영한 사진을 통해 그리는 등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현실까지 묘사한다. 즉, 존재하지만 인간의 시각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현실까지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때로는 하이퍼리얼리즘이 사진기를 능가하기도 한다. 사진도 계속 확대하다 보면 화질이 깨져 불분명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이러한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섬세하게 그려내, 사진보다 더 선명해 보이는 작품을 완성한다.


이를 통해 하이퍼리얼리즘 예술가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무.생.물>을 그린 김영성 작가는 금붕어뿐 아니라 개구리, 달팽이 같은 작은 생물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김 작가는 그 까닭에 대해 “평상시에는 외면하기 쉬운 작은 생물을 극대화해 저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보기 위함이다”고 밝혔다.


| 냉철한 묘사가 시사하는 현실의 이면



▲ 론 뮤익 <여자 아이(A Girl)>.[출처 | 아트인사이트]


하이퍼리얼리즘 예술가들은 현실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극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현실 그 이상의 의미를 고발해 왔다. 갓난아기를 떠올려 보자. 귀여운 볼살과 아장아장 다가오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행복해진다. 그러나 대표적인 하이퍼리얼리즘 예술가 론 뮤익의 <여자 아이(A Girl)>는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아기의 모습과는 상반된다. 해당 작품은 평균 50cm 크기의 갓 태어난 신생아를 10배에 가까운 487cm로 확대해 조각한 작품이다. 이 거대한 신생아는 온몸이 하얗게 일어난 피부 각질로 뒤덮여 있고, 쪼글쪼글하게 주름진 피부는 신생아보다는 노인을 연상시킨다. 눈을 뜨지 못하고 한껏 찡그린 표정에 더해 출산 시 함께 나온 이물질과 혈흔이 묻어 있다.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의 현실적인 모습이지만, 감상자는 평소 떠올리던 귀여운 아기와 상당히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며 기괴함과 충격을 느낀다. 뮤익은 해당 작품을 통해 한 생명의 탄생이 그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고통과 역경을 이겨낸 결과물이며, 탄생의 순간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계속 이겨내야 할 고난을 보여주고자 했다. 아이의 탄생은 축복의 순간이기에, 그 순간에 아이가 살아갈 동안 경험할 수많은 고난과 실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그러나 뮤익은 우리가 외면하는 삶의 괴로움과 두려움에 직접 대면해야 함을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더 큰 현실을 시사한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 혹은 봤으면서도 외면해 왔던 문제들을 작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꺼내 볼 수 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현실을 기계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인간에 대한 고찰 등 작가만의 세계로 해석한 더 깊은 현실을 보여준다.


글 | 양윤서 기자 yunseo7196@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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