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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우리를 과거로 이끄는 진한 향수


 노스탤지어,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



바야흐로 ‘노스탤지어’가 지배하는 시대. 청년들은 디지털카메라에 열광하고 TV에서는 80년대 배경의 드라마가 흥행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기획 면에서는 ‘노스탤지어’가 우리 사회와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날이 오기를 날마다 원하며 바라고 있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며 장장 20년 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다. 그가 오랜 전쟁과 항해 동안 수많은 유혹과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귀환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끝내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낸 강렬한 의지의 근원은 ‘노스탤지어(Nostalgia)’에서 비롯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노스탤지어를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의하고 있다. 노스탤지어란 용어는 스위스의 의학자 요하네스 호퍼에 의해 창안됐다. 그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명명되지 않은 공통적인 질환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병’이었다. 이 질환을 겪고 있었던 사람들은 대개 불면과 식욕 부진, 갈증과 같은 병적 증상을 호소한 데다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호퍼 박사는 그들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고 곧 그 증상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끝에 고안된 단어가 바로 귀환을 뜻하는 그리스어 ‘nostos’와 고통을 뜻하는 그리스어 ‘algos’를 조합한 ‘nostalgia’, 즉 귀환의 고통이었다.


타국으로 떠나 용병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당시 스위스에서는 노스탤지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점차 확산됐다. 노스탤지어로 죽는 용병들의 수가 늘어나자 스위스 사람들은 점차 노스탤지어를 단순하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하나의 ‘정신적인 병’으로 인식하게 됐다. ‘노스탤지어는 치료돼야 하는 질환’이라는 믿음이 스위스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은 후였다.


이후로도 노스탤지어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질병이자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19세기 미국 군의관 알프레드 캐슬맨에 의하면 남북전쟁에 참전한 위스콘신 지원병의 최초 사망자는 숨을 거둘 때까지 향수병에 시달렸다. 그 외에도 향수병에 시달리던 백인 병사 5,238명이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그중 58명이 사망했다. 20세기 초에는 아폴로니아라는 가정부 소녀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돌보고 있던 아이를 죽인 사건도 있었다. 아폴로니아를 시작으로 고향을 떠나 향수병에 걸린 다른 수많은 소녀들의 잔혹한 범죄가 이어졌다.

 

그러나 고향병의 잔혹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이 ‘아폴로니아 사건’은 의외로 노스탤지어에 대한 인식 변화의 계기로 기능하기도 했다. 독일의 의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아폴로니아 사건에 대해 작성한 논문이 크게 대두되고 나서부터였다. 그 뒤로는 비단 의사뿐만이 아니라 철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심지어는 경제학자까지 달려들어 노스탤지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노스탤지어를 통해 고향에서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궁극적으로 기쁨을 선사 받고 마음을 위로하며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견해는 ‘고향’에 더불어 ‘지난 시절’, 즉 과거 자체에 대한 그리움을 포함하는 노스탤지어의 현대적인 개념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20세기 연구자들의 관념이 현대와 같은 개념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가 고향이라는 장소뿐만 아니라 과거라는 시간의 범주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돼야 했다. 즉 ‘노스탤지어가 과거를 미화시켜 고향을 넘어선 과거 전반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학자 프레드 데이비스가 크게 공헌했다. 그는 『어제에 대한 동경』이라는 저서를 통해 사회학적으로 노스탤지어에 접근했고, 이러한 데이비스의 시도는 노스탤지어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이제 노스탤지어는 더 이상 두렵거나 위험한 현상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많은 순간, 다양한 장소에서 노스탤지어를 경험하고 또 그로부터 안정감을 느낀다. 특히 기업들이 마케팅 전략으로 노스탤지어를 얼마나 활발히 활용하고 있는지는 노스탤지어에 대한 개념과 인식의 변화를 명확히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글 | 김보령 기자 br20240019@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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