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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우리를 과거로 이끄는 진한 향수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 아네모이아



바야흐로 ‘노스탤지어’가 지배하는 시대. 청년들은 디지털카메라에 열광하고 TV에서는 80년대 배경의 드라마가 흥행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기획 면에서는 ‘노스탤지어’가 우리 사회와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아네모이아’란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대해 느끼는 향수’를 일컫는 신조어로, 미국의 시인 존 쾨닉이 자신의 책 ‘모호한 슬픔의 사전(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에서 처음 사용했다. 실제로 겪은 적 없는 대상에게서 느끼는 생소함과 신기함에, ‘돌아갈 수 없는 과거’라는 시간적 개념이 합쳐져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발현된다. 조연주 심리학 강사 겸 작가는 “일반적인 그리움과 향수는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를 ‘회상(회고)’하는 것이라면, 아네모이아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접해 본 적 없는 문화에 대한 ‘동경’의 감정”이라며 아네모이아와 그리움·향수의 차이점이 ‘해당 시절을 겪어본 적 없는’ 세대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아네모이아를 느끼는 주체는 주로 디지털화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다. 과거에 출시된 디지털카메라(디카)의 유행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신 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와 비교해 화질도 많이 떨어지고 현상 과정도 불편하지만, 디카를 찾는 이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디카를 찾는다고 말한다. 진유리(18) 씨는 디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불편하고 복잡한 현상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며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더 끌린다”고 설명했다. 9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인기를 끌며 최근 재개봉하고 있다. 청년들은 느껴보지 못한 90년대 홍콩 감성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이 모(18) 씨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와는 달리, 번거롭더라도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그 시대만의 감성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발달은 젊은 세대 사이에 아네모이아가 확산하는 데 한몫했다. 과거 보존이 용이해지며 옛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돼 청년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다. 이하림 시각문화연구자는 “오늘날의 대중 문화 환경에서는 미디어와 여러 작품을 통해 공유되는 문화적 기억을 자신이 실제로 겪은 듯 경험하는 현상이 생긴다”며 “기술과 대중 문화를 통해 전수된 기억이 실제 경험하는 기억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20대들이 겪는 아네모이아의 원인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20대들은 과거의 어떤 것에 매력을 느끼고, 그리워하는 걸까? 핵심은 어딘가 아련한 감정이 드는 과거만의 독특한 매력에 있다. 지금껏 자라온 디지털화된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감정이기에 청년들은 흥미를 느낀다. 조 작가는 구제 물건과 저화질 디카를 20대가 아네모이아를 느끼는 예시로 들며 “(현 20대에게는) 저화질 사진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옛 감성을 향유하는 것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발전시키며 자기효능감과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성수’와 ‘을지로’가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두 지역에는 현대 사회가 주지 못하는, 과거로부터의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밀집해 있다. 세운상가 등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레트로 상권은 기존 청년들이 겪지 않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조 작가는 “(젊은 세대는) 디지털에 피로감을 느껴 과거를 그리워한다”며 “과거의 촌스러움은 그 시절의 낭만으로 포장돼 동경과 아련함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아련하게 느껴지는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는 “경험하지 않은 시공간의 이미지가 대중 문화에 여러 번 활용되다 보니, (과거를 실제 경험한 것처럼 인식하고) 몰입 대상이 된다”며 우리나라의 레트로 열풍을 설명했다.


그러나 아네모이아의 유행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청년들의 불확실하고 두려운 현실을 외면하는 성향이 더욱 아네모이아를 쫓게 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지나치게 그리워하다가는 자칫 문화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 연구자는 “(아네모이아의 유행은) 사람들이 ‘경험한 시공간’을 친숙하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비판 없이 과거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건 구체화되지 않은 ‘과거’라는 관념에 갇히는 꼴”이라는 의견을 남겼다.


글 | 하헌빈 기자 gkghsql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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