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Sliding to KBO 리그


  야구공이 날아오른 궤적을 따라



“승리를 위해 힘차게 날려라~” 1980년대부터 국민들을 울고 웃게 만들며 꾸준한 인기를 누려온 한국 프로야구, KBO. 이번 기획에서는 야구의 매력과 역사, 그리고 시대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미래 프로야구의 모습을 알아봤다. <편집자 주>





지난 3월 23일 개막 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 리그, 그 시작을 되짚어봤다.


1960년대 후반, 전국 고교 야구 대회가 열리던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은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관객들로 북적였다. 고교 야구는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 후 중앙일보를 비롯한 신문사들이 고교 야구 대회를 개최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각 고등학교에서는 야구부를 창단했으며 고교 야구 선수 스타들이 탄생했다. 1971년, 남우식 선수는 5개의 전국대회에서 19승 1패를 기록하며 혜성처럼 고교 야구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한국 프로야구는 대중의 관심을 정치에서 스포츠로 돌리기 위해 추진된 정책의 일환으로 창립됐다. 이에 앞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국내 지역을 여섯 구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별로 대표 기업을 선정해 프로야구단을 운영할 계획을 세웠다. ‘기업체 총수의 출신지’에 따라 지역별 대표 기업이 선정됐으나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전·충청 지역을 맡을 기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선순위였던 한국화약그룹(현 한화)과 동아건설이 모두 거절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KBO는 당시 대학시절부터 야구에 심취해있던 두산그룹의 박용곤 회장을 설득하기로 했다. 박 회장은 한국프로야구 창립 소식을 듣고 서울을 연고지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진작 밝혔으나, 그보다 먼저 MBC가 서울을 선점한 상태였기에 좌절된 상황이었다. KBO는 그를 어렵게 설득해 3년 후 두산의 서울로의 연고지 변경을 약속하고 당장은 대전·충청 지역을 맡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 서울의 MBC청룡 △ 부산과 경남권의 롯데 자이언트 △ 대구와 경북의 삼성 라이온즈 △ 광주와 호남의 해태 타이거즈 △ 대전과 충청의 OB베어스 △ 인천의 삼미 슈퍼스타즈가 창단됐다. 1982년 1월부터 차례로 창단식을 열었으며, 한국 최초의 프로 야구단 탄생에 전국민은 열광했다. 1990년 서울 잠실에서 이뤄진 LG-해태전에서 LG가 10:0으로 압도적으로 앞서자 분노하던 해태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해 대신 경기를 뛰려했을 만큼 당시 전국민은 야구에 열광했다.


그 후 프로 야구단은 인수와 새로운 팀의 창단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삼미 슈퍼스타즈’는 총 세 번의 인수 끝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창단 당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삼미 슈퍼스타즈는 ‘슈퍼스타즈’란 이름이 무색하게 빈약한 선수 구성으로 처참한 성적을 받았다. 창단 이듬해인 1983년엔 판정에 불만을 가진 구단의 김진영 감독이 주심의 배를 머리로 들이받은 후 심판에게 폭력을 휘둘러 구속되며 구단 내 혼란이 가중됐다. 야구단의 계속된 적자와 기업 이미지 하락에 야구광였던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청보식품과 구단 인수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다사다난한 날들을 겪은 한국 야구는 40년이란 긴 세월을 거쳐 오늘날의 10개 구단 체제로 변모했다. KBO 리그는 2024 시즌에서 역대 두 번째로 빠르게 100만 누적관객을 달성하는 쾌거를 보여주며 현재까지 그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글 | 조은솔 기자 eunsol0407@sogang.ac.kr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