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visual

트라우마, 그 깊고도 어두운 터널 속으로


 트라우마, 흐르지 않는 시간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겪는다. 그 중에는 의도치 않은 고통스러운 경험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은 트라우마가 돼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트라우마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그 극복 방법을 알아봤다. <편집자 주>



집 근처 편의점에 가던 대학생 이은부(가명·20세) 씨는 두려운 얼굴을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음을 재촉했다. 고등학생 때 자신과 다른 친구 사이를 이간질했던 친구와 비슷한 얼굴을 본 것이다. “그 친구가 여기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어요. 결국 그 사람이 멀어질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죠.”


이 씨가 경험한 극심한 공포는 트라우마의 일종이다. 트라우마란 개인에게 신체적, 정서적으로 위협이 되는 사건으로 인해 불안, 우울, 수면 장애, 회피 행동과 같은 증상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 씨가 공포를 느낀 ‘학교폭력 가해자와 비슷한 얼굴’은 트라우마 스위치라고도 불리는 트리거에 해당한다. 트리거는 개인의 트라우마를 일깨워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특정한 상황이나 자극을 말한다. 트리거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낙태, 왕따, 전쟁, 인종차별 등으로 다양하다. 


하나의 사건뿐 아니라 ‘특정 시절 자체’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잦은 갈등을 보면서 자란 진주(가명·52세) 씨는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누군가가 소리 높여 싸우는 광경을 목격하면 온몸에 피가 빠지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부모님의 갈등을 말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던 어린 시절 스스로가 무력하다고 느꼈다는 진 씨. 이처럼 그의 ‘어린 시절 자체’도 트라우마의 한 갈래다. 따돌림을 겪은 학창 시절, 군복무 시절, 입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겪은 입시생 시절 모두 그 자체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한편 쉽게 혼동되는 트라우마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PTSD는 특정 경험이나 사건으로 겪게 되는 스트레스 장애다. PTSD의 주된 증상은 충격적인 사건과 관련된 상황 혹은 자극을 회피하려는 태도다. PTSD는 임상적으로 치료가 요구되는 ‘질환’인 반면 트라우마는 PTSD를 발병시킬 수 있는 ‘원인’에 가깝다. 어린 시절 거리에서 고함을 지르던 성인 남성을 본 이후 PTSD를 겪고 있는 신단아(가명·20세) 씨는 “성인 남성이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큰 소리를 낼 때면 과호흡을 겪으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고 전했다. 


글 | 조은솔 기자 eunsol0407@sogang.ac.kr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