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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은 정말 '참'한가요


 “참교육은 결투와 유사” ··· 문제 낳는 근본적 구조 개혁해야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직접 복수하는 드라마 <더 글로리>부터 문제아를 선도하는

웹툰 <참교육>까지 참교육은 분야를 막론하고 등장하는 단골 창작 요소다.

창작물 속에는 혐오 표현과 폭력이 난무하고,

영상 소비로 얻는 통쾌함 속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쉽게 잊힌다.

우리가 열광하는 참교육이 진정 참된 교육이 될 수 있는지 알아봤다. <편집자 주>



참교육 콘텐츠가 범람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만화,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를 분석하는 성상민 문화평론가에게 참교육 콘텐츠의 사회적 영향과 올바른 수용법에 대해 들어봤다.


Q. 참교육 콘텐츠가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 감정이나 심기를 건드리는 대상을 정면으로 복수하거나 심판하는 서사 때문일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문제를 저지른 자가 되갚음을 받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자극적인 쾌감을 주니까요.


이런 식의 복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신체적으로 상대방을 때려눕힐 만한 체력적인 힘이 있다거나,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처럼 가해자를 스스로 함정에 처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어야 이러한 복수도 가능합니다.


‘참교육’은 엄밀히 말하면 ‘사적 제재’입니다. 근대까지 ‘결투’ 등의 형태로 사적 제재를 허용했던 국가도 여러 문제로 이를 없앴습니다. 사적 제재는 아무리 가해자가 원망스럽다 하더라도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폭력적 피해를 주는 것이 온당한지, 여러 지위나 능력이 있는 자만이 사적 제재도 원활히 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참교육 콘텐츠’는 일종의 대리만족이기도 합니다. ‘딸배헌터’ 같은 ‘연출하지 않은, 실제로 현실에서 이를 행하는’ 콘텐츠는 마치 리얼리티 예능처럼 만족감을 극대화합니다. ‘피해자가 자신이 입은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는 문제’도 이러한 콘텐츠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교육 콘텐츠’가 주목받는 이유는 대리 만족의 서사와 구조의 문제를 뒤엎는 자극 때문입니다. 소위 ‘막장 드라마’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참교육 콘텐츠가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요?


A.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무기를 활용해 복수하는 ‘결투’를 합법적으로 취급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사소한 문제나 중범죄를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여기거나, 이러한 절차를 밟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가해자에게 결투를 걸었죠.


통상적으로 역사학자들이나 범죄학자들은 결투가 범죄율의 감소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분석합니다. 사형이 비판받는 이유처럼 가해자가 정말로 가해자인지 합리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벌이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의 소유자가 결투를 신청할 경우, 가해자가 먼저 목숨을 끊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참교육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참교육 콘텐츠 제작자들은 근대 이전까지의 결투처럼 직접 신체에 손상을 주는 식으로 사적 제재를 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벌이는 ‘문제 해결을 위한 참교육’은 가해자나 범죄자에게는 이들의 눈초리를 피할 수단을 찾거나, 운이 없어 걸렸다는 인식만 늘릴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파라치’라는 형식으로 문제 대상을 제보하면 포상금을 주는 식으로 나섰던 제도 대다수는 참교육 콘텐츠 제작자처럼 전문적인 제보자를 대거 길렀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발생 건수를 극적으로 줄인 것도 아니며, 문제의 근본적 원인도 해결하지 않은 채 문제 자체를 제보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기는 음성화만 강해졌을 뿐입니다. 참교육 콘텐츠 역시 그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참교육이 극단화된다면, 문제 대상들은 합법적, 비합법적 수단을 모두 동원하며 자신들에게 어떻게든 통쾌함을 주려는 참교육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역으로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겠죠. 결국 이는 참교육 콘텐츠는 제작자와 문제 대상의 대결만 격화시킬 뿐, 문제를 낳는 구조나 원인에 대한 접근을 지금보다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Q. 사회가 개인의 잘못된 행동을 고쳐나갈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A. 문제가 발원하고 진행된 구조와 흐름을 정합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딸배헌터’는 신호위반, 과속을 감행하는 라이더들이 어떻게든 처벌받게 합니다. 그런데 왜 배달 노동자들은 자주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을까요? 원래부터 배달 노동자들이 교통법규 따위는 모르는 악인이라서 그런 걸까요? 우선은 이 ‘배달 노동’이 어떤 구조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개별 식당들이 배달 노동자들을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대하는 관계는, 배달 전문 앱이 등장한 후 앱이 라이더를 배차해주면 라이더들이 제때 가게에서 음식을 픽업하고 무사하게 배달하면 그만인 피상적인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배달 기사는 몸을 소위 ‘갈면서’ 매일 무수한 배달 건수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려면 알게 모르게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까지 콜 수를 채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배달 노동’을 하게 될까요? 한국의 구인배율(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은 IMF 이후 한 번도 1, 다시 말해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더 많은 상황을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많아도 0.7 수준, 최악이면 0.3까지도 떨어지기도 하죠. 한국은 일자리 자체가 상당히 부족한 국가입니다.


또한 2020년 이후 전 세계에서는 코로나19로 실직한 노동자들이 속출했고, 한국처럼 불안정 노동이 보편화되고 일자리가 많지 않은 국가는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마침 ‘비대면’이 보편화하며 배달 앱 같은 각종 서비스가 성장하자, 구직자나 실직자가 대거 배달 노동자가 되겠다고 나섰죠. 게다가 이 일은 ‘빠르게, 운전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문턱도 꽤 낮아 보였을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도, 일을 시키는 사람도 준비 없이 나선 결과, 배달 노동자들의 교통법규 위반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대로 된 일자리도 나오지 않고, 사회의 안전망이나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는 상황에서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인원이 계속 배달 일로 몰립니다. 배달 플랫폼 사업자들도 이들을 빠르게 채용해, 더 빠른 배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에 여념이 없죠.


‘딸배헌터’ 등이 지적하는 ‘배달 노동자의 문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조를 결코 도외시할 수 없습니다. 전체적인 노동 구조를, 그리고 ‘유료 배달 중개’로 이윤을 챙기는 플랫폼의 문제를 동시에 짚어야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죠. 


‘개인’을 단위로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큰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범법자 개인에 대한 공적 처벌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개인이 쉽게 문제를 저지르게 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문제 대상은 끝없이 등장하고 이들에 대한 체포, 처벌에 관한 사회적 비용만 소모될 것입니다. 구조에 대한 면밀한 이해와, 이를 통한 근본적인 개혁과 변화를 고민해야 잘못을 저지르는 개인도 유의미하게 줄 수 있겠죠.


Q. 참교육 콘텐츠를 바람직하게 수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A. 다양한 시선으로 미디어를 보는 사고, 소위 ‘미디어 리터러시’를 습득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해외처럼 체계화되거나 깊이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여전히 정착되지 못했습니다. 미디어가 항상 옳은 말만 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한계도 존재하는데, 이들을 맹신하거나 완전히 불신하기 바쁩니다.


쉽지 않지만 조금씩 생각을 깊이 있게 해보는 연습이 필요하겠죠. 지금 내가 보는 미디어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지, 그 이야기의 전달방식은 온당한지, 나라면 어떤 식으로 이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지 등 ‘마인드맵’을 짜듯 생각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그렇게 어려운 길도 아닙니다. 당연하게 보이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조금씩 실천으로 옮긴다면 어렵게만 보인 사고방식은 일상적 태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비판적 사고’를 참교육 콘텐츠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를 만나며 생각할 수 있길 바랍니다.


차의진 기자 iamchayj@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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